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5

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5

‘만주’는 몽골, 한반도, 연해주, 시베리아로 둘러싸인 동북아시아의 내륙이다. 우리나라와 몽골, 일본, 중국, 러시아가 오랫동안 뒤엉켰는데, 현재는 행정구역상 중국의 ‘동북 3성과 내몽고자치구’에 해당된다.

만주의 골격은 만주 종단철도로 ‘대련항(요령성)~심양(요령성 수도)~장춘(길림성 수도)~하얼빈(흑룡강성 수도)~만주리(내몽고자치구)’를 잇는다. ‘자바이칼스크 주(Zabaikalsk Krai)’는 러시아 연방의 행정구역이자 국경에 있는 주(州)로 만주의 북쪽, 몽골의 북동쪽, 시베리아의 동쪽, 하바롭스크의 서쪽에 둘러싸인 내륙이다. 러시아어의 ‘자(Za)’는 ‘~의 뒤에’라는 의미로, ‘자-바이칼스크’는 모스크바에서 보았을 때 ‘바이칼 호수의 뒤쪽에 있는’이란 뜻이다.

이곳은 중국과 몽골, 러시아의 문화가 겹친 곳으로 시베리아의 동쪽 입구이며, 인구는 약 120만 명인데 면적은 한반도보다 약 2배 넓다. 주의 수도는 ‘치타(Chita)’이며, 치타에서 중국 방향으로 450km를 가면 소도시 ‘자바이칼스크’가 나온다.

만주리-자바이칼스크
‘만주리-자바이칼스크(滿洲里-Zabaikalsk)’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연결점이다.

중-러 국경이면서 표준궤와 광궤가 바뀐다. 중-소 영토분쟁의 아픈 역사가 있으나, 현재는 양측이 숨을 죽이고 협력하는 곳이다. 유라시아 철도 국경에서 궤가 다른 경우, 수입국에서 궤를 바꾸면서 화물의 서류를 검사한다. 이를 위해 ’만주리-자바이칼스크‘의 약 10km 구간에는 광궤, 표준궤가 모두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것은 만만치 않다. 필자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했는데, 노보시비르스크공항을 거쳐 치타공항에서 내린 후 ’치타~자바이칼스크‘까지 약 12시간 운행하는 야간열차를 탔다. 창 밖으로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자작나무와 화차, 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경에서 출발하는 만주리행 항공편이 있지만, 운항 횟수가 적어 하얼빈역에서 15시간 정도 가는 야간 열차를 타는 것이 좋다.

‘만주리’는 약 25만 명의 국경 소도시로, 자바이칼스크에 비하면 대도시다. 만주리는 ‘중국 속 러시아‘로 불리는데 러시아인과 몽골인, 중국인들이 각국 언어와 영어(4개 국어)를 쓰며 위안화와 달러, 루블을 사용하는 곳이다, 시장과 호텔, 상점, 레스토랑, 환전소 등이 즐비한데 러시아인들이 중국 물건을 사러 온다. ‘자바이칼스크’는 인구 약 1만 명이 넘는 국경역 소도시로, ‘자바이칼스크 주’에 속한다.

자바이칼스크에는 러시아인들이 다수를 이루며, 러시아로 입국하려는 중국인들도 볼 수 있지만 시장은 고사하고 상점, 식당도 거의 없다. 1904년 철도가 건설되었고, 1929년 중-소 국경 분쟁 이후에는 ‘공격을 물리치다’는 의미인 ‘오트포르 (Otpor)’로 불렸다. 1958년 중국이 도시명을 변경해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자바이칼스크’로 개명하였다.

자바이칼스크는 만주리에 비해 소박하고 한적하다. 만주리를 돌아보는데 하루가 소요되지만, 자바이칼스크는 1~2시간이면 족하다. 두 나라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을 번걸아 쳐다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만주 횡단과 만주 종단
만주 철도의 구조를 살펴보자. 유라시아 횡단의 뼈대는 시베리아 철도로 ‘모스크바~노보시비르스크~이르쿠츠크~치타~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항’의 약 9.300km다. 시베리아 철도는 치타 부근에서 만주 철도와 만난다. 그리고 만주 철도는 크게 만주 횡단과 만주 종단이 있다.

횡단은 ‘(치타~자바이칼스크-만주리~하얼빈)~수분하~블라디보스토크항’의 약 1,700km 구간이며, 종단은 ‘(치타~자바이칼스크-만주리~하얼빈)~장춘~심양양~대련항’의 약 2,300km 구간이다. 즉, 하얼빈에서 횡단과 종단이 나뉘며 횡단은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종단은 대련항으로 향한다. 종단 구간 중에서 장춘 이남을 남만주 철도, 장춘 이북을 북만주 철도라 한다.

횡단은 나진을 통해 경원선에, 종단은 신의주를 통해 경의선에 연결된다. 따라서 한반도가 만주와 연결되는 통일 시대에는 ‘서울-신의주-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를 점으로 하는 마름모꼴 철로가 만들어진다.

현재는 횡단이 중국의 동북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 간 지역 교류에서만 사용되는 반면에, 종단은 중국-러시아-유럽 간 국제적으로 활발하다.

동북아에서의 러-일 철도 전쟁
만주 철도의 역사를 살펴보자.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으로부터 만주를 빼앗는다. 그런데 1898년 러시아가 일본에 압력을 가해 만주를 청에 되돌려주고, 그 댓가로 러시아는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었다.

러시아는 1,520mm의 광궤로 만주 횡단 노선 ‘치타~자바이칼스크-만주리~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항’을 깔았다. 만주 횡단을 ‘청나라의 동쪽’의 의미로 ‘동청(東淸)’ 철도로 불렀다가 중화민국이 성립된 뒤에는 ‘중국의 동쪽’이라 하여 ‘중동(中東)’ 철도라 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대련항으로 향하는 만주 종단도 깔았다. 한반도 철도부설권을 얻은 일본은 한반도에 1,435mm의 표준궤(標準軌)를 설치하였고, X자 모양으로 한반도 철로를 설계하였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남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했다. 북만주 철도는 러시아가 통제하였으나. 남만주 철도를 차지한 일본은 러시아식 광궤를 일반 표준궤로 변경했다. 1911년 일본은 944m의 압록강철교를 설치하여, 한반도와 남만주를 표준궤로 연결했다. ‘부산항~서울~신의주~압록강철교~단동~심양~장춘‘을 연결하면서, 일본은 대륙 진출을 꿈꾸었다.

한편 ‘장춘~길림~연변~회령~청진항’으로 연결되는 길회(길림-회령) 철도를 추진하였다. 길회 철도는 만주-한반도-일본을 잇는 최단거리 노선이다.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향하는 중동 철도와 청진항으로 향하는 길회 철도는 서로 경쟁했다.

하바롭스크를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이 1916년에 완성되었고, 길회 철도의 등장으로 중동철도의 가치가 떨어지자, 소련은 1935년 중동 철도를 일본에 팔았다. 만주 종단과 횡단 모두 일본으로 귀속된 것이다. 이후 1945년 2차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은 만주 철도를 중국과 공동 운영하다가, 1952년 중국에 넘겼다.

만주 종단과 시베리아 횡단
‘대련항~심양~창춘~하얼빈~만주리-자바이칼스크~치타~시베리아~모스크바~폴란드’까지 만주 종단을 통하여 시베리아 횡단을 이용하는 물동량이 많다. 만주와 유럽을 오가는 자동차부품과 전자제품,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목재, 석유, 원자재, 생활용품 등이다. 중국-유럽을 오가는 화물은 궤를 2번이나 변경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주로 컨테이너째로 운송된다.

중국-러시아 화물은 컨테이너도 있지만, 일반 화차도 많이 이용한다. 즉, ‘만주리-자바이칼스크’ 구간은 중국 화차에서 러시아 화차로 또는 러시아 화차에서 중국 화차로 화물을 옮긴 뒤 운송한다.

시진핑 정부가 일대일로 정책을 수립한 이후 만주뿐만 아니라 중국의 천진, 상해, 광주에서도 만주 종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화차 부족과 터미널 협소로 만주리-자바이칼스크의 정체도 늘어나고 있다. 참고로 자바이칼스크에는 2개의 터미널 회사가 있는데 러시아 철도청 산하의 ‘트랜스컨테이너’와 민간기업인 ‘DVTG’가 각자 운영하고 있다.

한국발 화물도 만주 종단을 이용하는데, 인천에서 대련이나 영구로 가는 선박에 컨테이너를 싣고 만주리-자바이칼스크를 통해 동유럽으로 간다. 약 26일 정도 소요되므로 약 20일을 단축하지만, 지중해를 거치는 해상보다 운송료가 2~3배 비싸다.

‘만주리-자바이칼스크’,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있다. 한반도가 유라시아에 연결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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