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종사자 근로환경 개선, 원인(저단가 경쟁)제거가 우선

새 정부 출범으로 노동시장 근로환경 개선이 전체 산업계 정책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덕분에 오랜 시간 산업시장 가장 하부에서 묵묵히 일해 왔던 물류산업의 노동환경 개선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특히 여러 물류업종 중 장시간 근무의 폐해가 커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택배서비스 산업이다. 이에 따라 지금이라도 택배현장의 노동환경에 대한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럼 택배서비스 산업의 변화는 노동환경만 개선되면 될까? 아니다. 택배 노동환경개선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과당경쟁 환경이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는 택배요금도 일정부분 인상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택배시장 전반의 시스템을 바꿔야 택배사업자와 현장 종사자, 그리고 서비스 수혜자인 고객 모두가 행복한 변화가 가능해 질 전망이다. 때 마침 정부의 정책 방향도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지금이 택배시장을 변화시킬 적기 다. 대다수 택배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미봉책이 아니라 그 동안 지속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늦었지만 당장 변해야 할 택배현장의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무엇이 택배업계에서 변해야 하는지 짚어봤다.

 

◆노동환경 개선 위해선 ‘근무시간’ 감축 고려해야

택배서비스 현장은 사업초기인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0여 년 전 택배 종사자들의 노동시간은 짧게는 14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에 달했다. 말 그대로 잠만 자고 하루 종일 현장을 지켜야 하는 전형적인 과도한 노동이었다. 그 덕분에 3D 업종으로 전락해, 여전히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몇몇 대기업 택배사가 택배 분류 자동화 시설을 갖추면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빠르게 노동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전히 토요일 근무는 당연하고, 지금 같은 무더위에도 여름휴가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 택배현장의 현실이다. 여기다 택배요금은 매년 하락, 노동의 댓가인 임금 인상은 제자리다.

올 초 만난 베테랑 택배서비스 맨은 “택배 일을 한지 7년이 됐지만, 이틀을 넘는 가족 휴가를 가본적은 없다”며 “꾹 참고 몇년만 묵묵히 일하면 목돈을 만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택배업종의 무한 노동 상황은 쉽게 해소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열악한 택배현장 노동환경에서 대통령도 가는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문재인 정부 들어 ‘무제한 근로’가 가능한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가 여야의 합의점을 찾았다.

이렇게 되면 이들 업종은 26개에서 10개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합의 배경은 과도한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적극적 요구 때문. 과도한 노동 환경에서 고속도로 졸음운전으로 대형 화물차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장시간 근로로 내몰린 우정사업 집배원이 과로사나 자살하는 일이 끊이질 않고 있는 점도 특례업종에서 무제한 근로를 줄어야 한다는 명분이 됐다. 이 덕분에 시내·시외·고속·마을버스 운전자들은 주당 52시간 이상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됐으며, 우체국택배의 근간인 우편법도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개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문제는 이정도로는 현재 제기되고 노동환경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을 1주당 52시간(12시간 연장 포함)으로 정하고 있지만 59조에서 법정 근로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례업종을 지정, 무한 노동은 산업시장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류산업에서는 육상운송업, 유통업에서는 소매업 등 26개 업종이 노사 합의로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 근로를 할 수 있게 규정, 무한 근로는 사라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특례업종 종사자(5인 이상 사업장 기준 453만 명)는 전체 산업 종사자의 40.6%에 달한다.

 ◆택배운임 관련 최저요율제 도입도 고려

특례업종 축소로 물류시장 노동환경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은 너무 앞선 기대감이란 지적도 나온다. 당장 특례업종 축소시점을 언제로 할지, 또 휴일 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률은 얼마로 할지 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특례업종을 줄이면 추가 현장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이렇게 되면 비용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택배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고양이 목에 달아야 할 방울인 택배요금 인상은 과연 현 정부에서 가능할까?

이렇게 택배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는 택배업계 과당 경쟁과 맞물려 있으며, 과점을 향해 직진하고 있는 1위 택배사와 나머지 택배기업과의 시장 주도권 싸움과도 연관되어 있어 특례업종 축소만으로는 택배시장 노동환경 개선은 요원해 질 전망이다. 아주대 물류대학원 최시영 겸임교수는 “택배요금 인상안은 육상화물운송 시장이 요구하는 표준요금제와 유사한 형태로 정부가 일정부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현장 종사원들의 임금이 정상화되고, 노동시간에 대한 강제가 이루어져야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 택배사 관계자는 “당장 최저임금제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예상치 못한 각종 인건비 인상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요금인상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지만, 과연 요금을 지불하는 쪽에서 순순히 응해 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요금을 지불하는 고객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대형 온라인 몰 물류 담당자는 “현 택배요금에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대다수 화주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 가격으로 서비스를 하겠다는데 굳이 요금인상해 주겠다고는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택배시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택배기업들의 과당경쟁을 벗어나 운임인상에 대한 전략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택배전문가 조윤성 박사는 “정부가 요금을 강제하는 것은 자본 시장의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이에 앞서 현재의 운임구조가 적정한 노동을 보상할 수 있는 합리적 비용인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시영 교수도 “택배시장 노동환경 실태 조사에서 현장위주로 파악해야 한다”며 “우정노조와 우정사업본부(정부)측이 조사한 집배원들의 연간 근로시간 조사가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것은 현장과 사업자와 시각 차이에 발생하는 만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변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시점을 맞고 있는 택배산업. 이제 전체 택배시장이 각자의 입장만을 우선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서비스 제공자인 기업과 종사자, 수혜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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