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 이야기 1

 
유라시아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낯선 곳이다. 그러나 최근 유라시아의 개발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물류 네트워크로서 주목받고 있다. ‘가까운 러시아 다가온 유라시아’의 저자 정성희 롯데로지스틱스 수석은 유라시아의 전문가로 꼽힌다. 물류신문은 6월 15일자부터 정성희 수석의 ‘유라시아 물류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궤의 길이와 광궤 유라시아-
‘궤의 길이’란 철로의 안쪽 폭을 잰 것으로, 전 세계 수십 개의 궤가 있다. ‘표준궤’의 길이는 1,435mm이며 표준궤보다 넓은 궤는 ‘광궤’로, 이보다 좁은 궤는 ‘협궤’라고 부른다.

표준궤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북미, 중국,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 60% 이상의 나라가 운용하고 있고, 1,067mm의 일반적인 협궤는 일본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사용한다. 1,520mm의 일반적인 광궤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핀란드, 몽골, 폴란드 남부, 카프카즈 등 제정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지역에 적용되었다. 광궤가 깔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광궤 유라시아라고 부를 수 있으며, 광궤 유라시아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느냐가 유라시아 물류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중국과 이란, 터키, 폴란드, 북한 등은 광궤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그냥 궤를 바꿔서 철도운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한과 일본, 동남아, 독일, 터키와 같이 바다로 가야하는 곳에서는 선박을 타고 화물을 운송한다.

유라시아의 레일페리
레일페리는 내부에 철로가 설치된 선박이다.

도로가 잘 정비된 유럽은 주요 운송수단이 트럭이기 때문에 차량 그대로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트럭페리가 대부분이다. 반면 카스피해와 흑해, 발트해, 사할린 인근의 바다에는 특이하게도 레일페리가 운영된다. 레일페리 안에는 광궤 철로만 놓여 있기도 하지만, 광궤와 표준궤 또는 표준궤와 협궤 등 2개 이상의 궤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레일페리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부두에 레일이 깔려있어야 한다.

표준궤 지역인 독일의 자스니치항에는 표준궤가 설치되어 있지만, 광궤 부두도 같이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러시아 페테르부르그 인근의 우술루가항구에서 출발한 레일페리는 발트해를 건너 독일의 자스니치항구에 광궤 화차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 또한 광궤 화차는 다시 독일에서 러시아로 화물을 싣고 되돌아올 수 있다.

흑해에도 러시아와 터키,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조지아를 오가는 레일페리가 운영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조지아는 광궤 국가이고 터키와 불가리아는 표준궤 국가이다. 따라서 터키의 삼순항이나 불가리아의 바르나항구에는 별도로 광궤 철로를 설치한 부두가 구비되어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조지아 항구에서 온 레일페리가 광궤 화차를 토해낸다.

러시아 동부에서도 레일페리가 운영된다. 항구인 바니노항구에서부터 사할린의 촘스크항구까지다. 러시아 대륙에서 온 광궤 화차들이 사할린항구로 내려오는 것이다. 나는 2011년경 사할린에 처음 갔을 때 레일페리를 구경했다.

레일페리가 가장 활발한 유라시아 지역은 단연 카스피해다. 카스피해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와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 카자흐스탄의 아티라우와 악타우를 오가는 동서 레일페리가 운영된다. 구소련 영토였던 이곳은 광궤 지역이어서 광궤 페리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카스피해 서안의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를 관통하는 동서 레일페리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러시아의 아스트라한항구와 이란의 반다르에안잘리항구 사이를 오가는 남북 레일페리도 운항된다.

 
우리나라 동해와 레일페리의 가치
만약 레일페리가 동해상에서 운영된다면 가히 획기적일 것이다.

레일페리를 타고 온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대형 화차들을 사용해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엘지전자, 롯데제과, 한국지엠 등 한국산 화물을 싣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보낸다면 고작 15~18일이면 도착하게 된다.

만약 철로가 깔려있는 공장이라면 상당한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산 화물도 동해안을 통해 20일 이내에 우리나라에 도착할 수 있어 운송 일수를 10일 정도 앞당길 수 있다.

물론 해상운반용 컨테이너도 실을 수 있으며, 컨테이너 없이 대형 화차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대형 화차들은 약 150CBM에 약 60톤을 실을 수 있어 40피트 컨테이너 2개 이상을 담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공장에서는 화차가 위치한 부두 창고에 일반 트럭 또는 컨테이너째 운송하기만 하면 된다.

레일페리를 운영하는 부두로는 위치상 동해나 속초가 적합하며, 장기적으로는 부산항에도 연결되었으면 한다.

중국은 시진핑 정부 들어 중국횡단철도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은 나진-하산을 통해서 유라시아에 연결하려고 했지만, 북한의 벽이 높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에 광궤 유라시아 지역으로 연결할 수 있는 끈, 레일페리를 동해안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레일페리를 통해 유라시아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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