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을 굿타임으로 바꾸는 지혜… 버린다 vs 지킨다

위급한 사고를 당했을 때 혹은 미쳐 눈치 채지 못했던 중병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흔히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이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흔히 위기를 맞은 경제나 기업의 회생에도 자주 비유돼 쓰이곤 한다.

똑같은 병을 가진 환자의 치료법이 하나일 수 없듯이 기업의 위기 탈출 방법에도 다양한 처방전이 나온다. 어떤 약이 내 몸에 맞을지, 어떤 응급수술이 우리 기업에 맞을지 상반되는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치열한 기업 생존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장수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수많은 고비와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넘긴 덕분에 장수기업의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글로벌 장수기업들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은 그 비결을 ‘버림’이라고 말한다. 즉,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꾸준히 ‘버림’을 통해 경쟁기업과 차별화하며 고객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흑자사업을 버린 기업도 있었고, 주력사업이나 모태사업을 버린 기업도 있었다. 심지어는 사명까지 바꿔 버린 기업도 있었다.

이들 기업이 어떻게 ‘버림’을 실천했는지를 살펴보면 위기의 골든타임을 굿타임으로 바꾸는 비법을 찾을 수 있다.

■ GE :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다 버려라
지난 2015년 4월, GE가 금융 부문을 최대 75%까지 매각 또는 분사형태로 정리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세계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2013년 기준으로 GE 그룹 전체 수익의 55%를 차지하던 금융 부문을 정리하겠다고 한 것이니 그 발표를 듣는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앞서 GE는 가전사업 매각을 단행한 적이 있어 세계 경제계는 연이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123년의 GE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이었다. GE는 제조, 미디어, 금융 등을 아우르는 복합기업에서 원자력, 항공엔진, 의료기기 중심의 제조업체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GE가 이런 전략을 편 배경에는 잭 웰치 시절부터 원칙으로 자리 잡아온 ‘1등 아니면 2등’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잭 웰치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도태시킨다는 경영철학으로 150개가 넘는 사업 분야를 12개 사업군으로 재편성했다. 그 결과, 잭 웰치가 재임하던 20년 동안 매출이 270억 달러(1981년)에서 1259억 달러(2001년)로 늘어났고, 주가는 40배 이상 뛰었다.

■지멘스 : 미래가 안보여? 그럼 버려야지
GE의 경쟁업체인 지멘스도 ‘버림의 미학’을 잘 아는 기업이다. 물론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지난 2014년 5월 지멘스는 ‘지멘스 비전 2020’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분야에 집중투자를 하며 이에 맞춰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4개월 뒤인 9월에는 가전 사업 철수와 함께 미국 에너지 장비업체인 드레서랜드의 인수를 발표하면서 ‘비전 2020’의 실천의지를 대내외에 알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지멘스는 전력화·자동화, 가스 터빈, 해상풍력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포브스가 선정하는 ‘글로벌 2000대 기업’에서 대기업 부문 2위,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일반 산업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히타치 : 주력사업을 버리는 용기로 위기를 넘겨
2008년의 히타치는 회생불가의 불치병에 걸린 환자나 다름없었다. 그해 일본 제조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7,800억 엔의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대규모 응급수술(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먼저, 한국 업체들에 밀린 반도체, 디스플레이, PC, TV사업 등을 정리했다. 대신 인프라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에서 인프라 사업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IT·제어기술 등 자체 기술이 강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응급수술은 성공이었다. 히타치 매출 구조가 안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가전사업 비중은 전체의 10% 아래로 떨어졌고 반면 정보기술, 사회산업, 전자장치, 고기능소재 부문이 골고루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2013년(매출 9조 6162억 엔, 영업이익 5328억 엔)과 2014년(매출 9조 7619억 엔, 영업이익 6004억 엔)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히타치는 2015회계연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6,800억 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KEY POINT / 히타치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그들의 사업재편 과정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일본기업들과는 다르게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일본기업은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사업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게다가 M&A에 관해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이 가진 공통점 중에 하나다.

하지만 히타치는 달랐다. 그들은 인프라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 최근 3년간 20여 개 회사를 M&A하였다. 또한 잘 나가는 사업도 전략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구조조정 했다. 일례로 당시만 해도 수익성이 높았던 LCD 사업은 파나소닉에,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웨스턴디지털에 과감히 매각했다. 그리고 그 매각대금은 인프라 사업을 위한 M&A에 투입했다. 중병이 걸렸는데도 이렇게 치료할까 저렇게 치료할까 망설이면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응급수술은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히타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친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비극
잎서 GE의 라이벌로 과감한 ‘버림의 미학’으로 성공한 지멘스의 사례를 들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1886년 설립된 웨스팅하우스는 GE와 라이벌 전기회사이자 같은 원자로 제조기업이었다. 1979년 미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최대 원전 건설업체였던 GE와 웨스팅하우스는 똑같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을 했고, 이후 두 기업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GE는 1981년 잭 웰치의 등장과 함께 ‘1등 아니면 2등’의 일관된 전략과 이에 따른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한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7년까지 CEO가 4차례나 바뀌는 등 혼란을 겪으면서 뚜렷한 원칙이 없는 M&A로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2006년 그룹의 모체인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컴퍼니까지 도시바에 넘어가며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제까지 잘 나가던 기업이 오늘은 심각한 위기를 맞아 휘청거릴 때가 있다. 특히 과거에 성공했던 기업일수록 한번 부진에 빠지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앞서 ‘버림’으로 그 위기를 벗어난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봤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지킴’을 통해 위기 탈출의 골든타임을 벗어난 기업들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재기에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켜냈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을 뽑아냈다. 과연 부활 기업들은 골든타임을 어떻게 굿타임으로 바꾼 것일까?

■도요타 : 위기의 순간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불리던 도요타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차량 안전결함에 따른 천만 대 규모의 리콜사태, 거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악재 속에 끝없는 추락의 위기를 맞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지진이 외부적 요인이었다면 리콜사태는 도요타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품질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었다.

하지만 2013년 도요타는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이자 전 세계 자동차 업체 판매량 중 최고 기록인 998만 대를 판매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레고 : 다시 브릭으로 돌아온 레고
아동용 완구의 대명사인 레고는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 2000년도까지만 해도 세계 5위의 완구 회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랬던 레고가 2003년에 이어 2004년에 대규모 적자에 빠졌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레고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액션 피규어나 비디오 게임 같은 분야에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려 했던 것이다. 또 몇 시간씩 끈기 있게 브릭(bricks : 아이들 장난감용 벽돌) 쌓기를 해야 하는 제품으로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판단에 새로운 제품 라인을 확대해나갔다. 미소를 머금은 노랑머리 캐릭터 대신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레고의 상징은 미군 복장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의 핵심 고객층인 아이도 그리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레고를 사주던 부모도 레고를 떠나기 시작했다.

■ 디즈니 : 애니메이션을 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불리는 디즈니에도 흑역사는 있다.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사망하자 그동안 확장시킨 사업들이 디즈니의 발목을 잡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핵심역량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영화 수익은 감소하고 디즈니랜드의 입장료도 정체됐다. 심지어 캐릭터들의 인기가 차츰 시들해지면서 캐릭터 라이선스도 떨어졌다. 1984년에는 해체까지 거론될 만큼 디즈니는 수렁에 빠졌다.

KEY POINT / 2013년 발표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아직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겨울왕국’의 대성공으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왕국의 위상을 다시 확인했다. 디즈니는 어떻게 해체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성장을 누리게 된 것일까?

디즈니의 창업자 월트 디즈니는 “만화 영화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개발하여 캐릭터와 이미지를 지원함과 동시에 가치를 끄집어낼 수 있는 만화책, 테마파크, 같은 엔터테인먼트 자산들을 모아 가치창출로 성장을 지속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1923년 설립된 디즈니는 이런 명확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성장해왔다.

1984년 해체론이 거론될 때 디즈니의 새 CEO로 부임한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는 위기의 타개책으로 월트 디즈니가 1957년 고안한 비전 맵에 기반하여 핵심자산인 애니메이션에 다시 집중했다. ‘만화 영화에 올인’한 것이다. 그 결과,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디즈니는 암흑기를 마감하게 됐으며 미녀와 야수(1991), 라이온 킹(1994), 뮬란(1998) 등의 연이은 히트로 4%까지 곤두박질쳤던 박스 오피스 점유율을 10년 사이 19%까지 끌어올렸다.

핵심사업과 핵심역량… 뭐시 중헌디?
레고, 디즈니의 사례에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는 ‘핵심사업’과 ‘핵심역량’이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코닥이 몰락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많은 전문가들은 사양 산업이 되어가는 필름 분야를 포기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핵심사업인 필름 분야에 너무 매몰되어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하고도 기존 핵심사업인 필름 사업에 대한 믿음(미련?) 때문에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필름 사업에서 얻어왔던 이익을 유지하려고 했다. 2005년 경쟁사인 후지가 필름 사업 부문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과 달리 코닥은 필름 부문 매출을 20% 수준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2012년 1월, 코닥은 법정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코닥과는 달리 후지는 과감하게 기존 사업을 포기하는 것으로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그 동안 회사의 주력 부문이었던 필름 부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평판 디스플레이, 화장품, 제약 등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후지는 무조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기술 중에서 필요한 성분을 밸런스 있게 배합하여(formulation) 필요한 장소에(targeting) 필요한 형태로 제공한다(delivery)’는 FTD 원칙에 따라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를 위해 우선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을 꼼꼼하게 검토하였다. ‘우리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창의를 더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참고 문헌>
LG경제연구소, 준비된 기업이 버릴 수 있다(2015.8.11)
LG경제연구소, 관성(Inertia)에 빠지지 않고 일관성으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2014.9.21)
LG경제연구소,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기업(2013.12.16)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