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산업, 금융논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해운은 국가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의 혈맥이다. 이런 해운산업을 금융논리로 보아 그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세계적 국적 해운선사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야기된 해운산업발(發) 세계적 물류대란의 단초를 ‘해운산업을 해운논리가 아닌 금융논리로 인식하고 재단하려는 우(愚)’에서 찾는 한국해운조합 이기범 이사장의 일갈이다.

해운산업을 그 산업의 세계경제적, 국가경제적 역할과 가치로 보지 않고 금융논리로 보는 오류에 대한 안타까움, ‘그 같은 오류가 연안해운산업에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와 함께 ‘이 같은 오류에서 벗어나 해운산업을 지키려는 정부차원의, 국가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담긴 말이다. 이기범 이사장이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단과 만났다.

특단의 지원조치 필요한 연안해운산업
지난 6월 취임 이후 연안화물선 시장을 살펴보아온 이기범 이사장의 시장상황에 대한 인식은 많이 어둡다. 해운과 조선 호황기였던 2011년까지 연평균 6%대의 상승세를 이어왔던 선박 블록과 철강, 기자재 등의 수송량 증가율은 2011년 이후 연평균 4%대로 떨어졌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해운산업 불황의 여파가 연안화물선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앞으로도 국내 굴지의 해운·조선기업에 불어 닥친 한파가 연안해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이기범 이사장의 우려다.

이기범 이사장은 “해운·조선 전문가들이 앞으로 과거와 같은 호황기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며 “관련 화물을 수송하는 연안화물선사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러한 전망은 연안해운업계의 극복과제인 ‘연안화물선사 영세화 탈피’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기범 이사장에 따르면 해상화물운송사업은 지난 1998년까지 면허제로 운영되어 선복량 조정이 가능했으나 1999년 등록제로 변경됨에 따라 1998년까지 400여 개 업체에 불과했던 연안화물선사가 1999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14년에는 707개 업체로 늘어났다. 20년 새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기범 이사장은 “지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연안화물선을 통한 화물 운송량이 약 1억 1,700만 톤 수준에서 유지되어온 반면 연안화물선사 수는 80% 가량 늘어 업체당 수송 가능 물량은 40% 이상 줄었다”며 “이는 영세한 업체가 더욱 영세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주문이 행간에 담겨 있다.

선박 노후화, 연안해운 경쟁력 떨어뜨려
연안해운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으로 가장 크게 지적되어 온 것이 연안해운선박의 소형화와 노후화다. 선박의 소형화와 노후화가 연안해운선사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제대로 된 연안수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이에 대해 이기범 이사장은 선박을 짓기 위해 필요한 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음을 문제의 핵심으로 본다.

이기범 이사장은 “금융기관에서는 조선경기 불황 등으로 인해 선박 건조에 필요한 선수금 환급 보증을 꺼려하고 있어 선대구조 개선을 희망하는 선사가 많음에도 선박 건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해운산업 발전에 있어 제거해야 할 중요한 걸림돌로 꼽는다.

이 역시 금융논리가 해운논리를 압도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수금 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이란 조선업체가 선박을 제 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때 선주(船主)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보증을 선 보험공사나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말한다. 선주는 RG 발급을 확인한 후 대금 지급을 시작하고, 조선업체는 이 돈으로 원자재 구매 등 선박건조에 들어가게 된다.

연안해운 선대구조 개편작업 시급
연안화물선 시장 상황에 대한 이 같은 이기범 이사장의 인식과 판단은 ‘연안화물선사의 영세성 탈피와 안정적 해상운송사업 영위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말해준다. 특히 연안화물선사들이 안정적 해상운송 서비스를 수행함으로써 국가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선대 구조의 개편이 시급하다.

이기범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연안 화물선 선대 구조 개편을 위해 실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은 선박 건조 자금의 대출이자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이차보전사업’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 제도조차 이용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기범 이사장은 “선박 건조를 위해서는 금융권의 선수금 보증(RG)이 필요하나 최근 해운과 조선경기 불황으로 금융권에서 해당 업종에 대한 지원을 꺼림으로써 RG 발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이차보전사업을 통한 선대구조 개편 작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와 관련 이기범 이사장은 “조합에서는 정부와 금융권을 설득해 RG 발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노후화된 소형선을 젊은 대형선박으로 교체하는 선대구조 개편작업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해운의 역할·가치에 대한 바른 인식 선행돼야
이기범 이사장은 이러한 주문들이 수용되기 위해서는 해운산업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철도운송이나 육상운송에서 사고가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적 관심도 크고 정부의 대응 속도도 빠르다. 이는 철도운송이나 육상운송이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해상운송이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하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해운산업발(發) 세계적 물류대란이 불거지기 전 분위기가 이를 반증한다.

이기범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볼 때 해운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철도운송이나 육상운송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파장이 발생한다”며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번 사태를 금융논리로만 풀려 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한다.

무역 중심 국가의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이슈를 논하면서 해운논리 없이 금융논리로만 움직이는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얘기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는 이기범 이사장의 마음은 ‘해운업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거나, 제 목소리를 내어도 수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이사장 취임 전 밖에서 바라보면서 ‘해운업계에 오피니언 리더가 없나?’라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라는 이기범 이사장은 “해운조합에 들어와 보니 조합원인 연안해운선사들도 금융논리 때문에 배를 제대로 지어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요는 ‘해운시각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해야할 얘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힘과 논리력을 갖춘 인력배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이기범 이사장은 자신도 이 같은 과제 풀이에 한 몫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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