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절실한 건 해운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

해운산업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지금은 국적선사(해운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국적선사들이 생존을 위해 선박을 내다 파는 일은 더 이상 놀랄만한 사안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길은 외화벌이를 위한 수출, 내수 생산을 위한 원자재 수입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전체 회원사 중 해운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 이후 75개사가 폐업했으며, 2014년 흑자를 기록한 선사는 104개사였지만 적자인 경우도 55개사나 됐다. 지난 2월 29일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인터뷰를 갖고 해운산업의 위기에 대해 그동안 시행됐던 대응책과 향후 대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해운지원책 실질적으로 도움 되지 않아”
이날 인터뷰에서 김영무 부회장은 해운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다시 언급했다.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지난 2009년 있었던 KAMCO 선박펀드였다. 총 33척, 4,700억 원 규모의 중고선박에 대한 매입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그러나 저가 매입과 고금리 적용으로 선사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대형선사를 위한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역시 높은 상환비율과 고금리로 오히려 선사들의 경영여건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영무 부회장은 “선박금융과 해양플랜트를 위한 지원 방안 역시 5년 간 약 40~50조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정작 국적선사 대신 해외선사에 지원 폭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해외의 경우 자국선사의 위기극복을 위해 초기에 신규자금과 신용자금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부채비율을 감소시키고 이자부담을 완화하는 지원 덕분에 해외선사들은 신규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라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9년 이후 해외선사들에게 108억 달러를 지원한 반면, 국적선사에는 불과 19억 달러를 지원하는데 그쳤다. 한때 국적선사와 시장을 놓고 머스크는 국내에서 42억 달러를 빌려 40척의 초대형 선박을 건조했는데, 현재 세계 1위 지위를 유지하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한진 정상화 위해 회사채 연장 필요”
지난 2014년 설립된 해양금융종합센터도 해운업계에서는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던 사안이다. 그러나 출범 1년이 지난 지금도 내세울만한 실적은 없다. 김영무 부회장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의 해양금융부서를 통합했으나 실제로는 3개 기관이 별도로 운영되면서 시너지효과는 미미하다”면서 “3개 기관의 공동지원 금액은 18.5%인 3.7조 원, 78척이다. 그 중 국적선사는 6척에 불과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현황과 향후계획’에 대해 해운업계는 서운함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안에는 개별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원칙적으로 자체 노력으로 해소해야 하며, 부채율은 400% 이하만 지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적선사들은 선박과 사업부 매각, 유상 증자를 통해 꾸준히 자구안을 실행해 유동성을 확보했으나 회사채 연장 시 발생하는 20% 상환과 높은 이자율(10~12%), 영업손실을 만회하는데 사용하느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가장 지원이 시급한 원양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율은 700%가 넘는다. 현실적으로 지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회사의 올해 공모사채 만기도래 금액이 약 6,766억 원으로 유동성 공급이 시급하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6,766억 원의 회사채 만기를 연장해주고, 약 1.2조 원의 부채를 출자전환할 경우 별도의 추가자금 없이 경영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책금융에서 대형선박 확보해야”
해운업계에서는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올해 종료됨에 따라 내년 만기도래 금액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무 부회장은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내년의 회사채 만기도래 금액은 약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유동성 마련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지원이 절실하며, 상환부담도 현재 20%에서 10%로 완화하고 금리도 4~5%대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책금융기관의 선박금융 지원금액 중 해외선사에 대한 비중을 50%로 제한하며, 국내 조선산업의 내수비중도 높여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조선산업의 내수비중의 경우 중국과 일본은 50%대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5%대에 머물러있다. 더군다나 국내 금융지원의 이용 비중에서 해외선사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수록 국적선사의 선박 발주력이 떨어지는 만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국적선사들의 자금여력이 녹록치 않아 꾸준하게 선박 발주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정책금융이 나서서 대형 친환경선박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래 해운산업의 판도를 대형 친환경선박의 보유 여부에서 갈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대형 선박들은 기존 선박보다도 경제적인 운항이 가능하다. 따라서 해외 선사들은 앞 다투어 대형 친환경선박들을 발주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국내 조선소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선박의 대부분은 해외선사들이 가져갈 것들이다.

김 부회장은 “국내 대형선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느라 선박 대형화와 친환경 선박 발주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원가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라며 “정책금융기관에서 1만 8,000TEU급 대형 친환경선박 20척을 확보해 국적선사에 대선(임대)하면 해운업과 조선업의 상생은 물론 양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운업에 대한 관심 부족 아쉽다”
지원책에 대해 김영무 부회장의 말은 막힘없었다. 그는 해양금융종합센터에 대해서도 3개 금융기관의 선박파트를 통합해 기능을 강화하고 국적선사들 위주로 금융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행이 자국선사인 COSCO에 무려 108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한 것이나 덴마크정부가 자국선사인 머스크에 62억 달러의 금융차입을 제공한 사실을 덧붙이며,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줄기차게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영무 부회장은 해운산업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김 부회장은 “정부 부처나 국회에서 조선업을 주목하느라 해운산업은 뒷전에 밀려나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에도 해운산업에 대한 질의는 없었고, 해수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때에도 해운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라며 “해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현재로서는 그 어떠한 지원보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해운산업의 위기극복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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