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기업 흥망성쇠, 트렌드에 달렸다

트렌드(Trend). 국립국어원에서는 유행 혹은 경향으로 순화해 표기하는 단어다. 산업에서는 트렌드를 시장 변화의 흐름을 읽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변화의 흐름을 읽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역사에서 살펴봤을 때 이 같은 예는 매우 많은데, 임진왜란 초기 조선이 일본의 조총에 밀려 순식간에 한성을 내준 것도 그 중 하나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은 전쟁 이전에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위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고 있는 명나라와 일본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화살과 활을 만드는데 열중한 것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변화에 적절한 대응책을 갖지 못한 기업들은 간판을 내리거나,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이들에게는 트렌드의 변화를 등한시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물류산업도 예외는 없다. 트렌드를 읽은 기업은 수익과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뒤늦게 흐름을 따라가려다 위기에 빠지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봤다.

벌크 시장 주름잡던 대한해운
대한해운은 2000년대 국내 해운업계에서 맹위를 떨치던 해운선사였다. 지난 1968년 설립한 대한해운은 철광석과 유연탄을 운송하며 벌크선 업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기업이었으나,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벌크선 업계가 중국 등 신흥국의 수요에 힘입어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대한해운은 빠른 의사결정과 거침없는 투자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특히 2003년부터 수익을 극대화하며 5,000~6,000억 원대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1조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영업이익도 4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대한해운은 이름처럼 국내 최고의 벌크선사로 우뚝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연거푸 최대 실적을 갱신하면서 해운업계를 넘어 국내 대표기업으로 지목됐다. 2008년 영업이익률은 국내 해운선사 중 1위(16%)였으며, 세계 11위 해운선사로 발돋움했다.

흐름 못 읽고 과도한 ‘용선’에 쓰러져
거침없던 벌크선 시장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부터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의 기미가 감지됐고 운임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수익 악화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벌크선 업계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일축했다.

이들은 일시적인 소폭 하락일 뿐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새 벌크선 인도 시점이 늦어지고 있어 선박 공급량이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향후 2~3년 간 호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벌크 운임 곡선은 급격하게 아래로 꺾이기 시작했고, 벌크선 업계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익이 크게 악화되면서 대한해운은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벌크선사 1위에 빛나던 회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대규모 감원과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입장이 됐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도하게 용선의 비중을 늘렸던 점을 패착으로 꼽는다.

당시 호황이 지속되면서 크게 성장한 대한해운은 더 많은 선박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러나 새 선박을 구하기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배를 빌리는 용선에 주력했다. 2008년 대한해운이 보유한 용선은 무려 150여척에 달했고, 보유 선박은 30여척에 불과했다. 지나친 용선 늘리기를 두고 어려 차례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지만, 이를 읽어내지 못한 대한해운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용선 규모를 줄이지 못했다.

특히 전문가들이 수익 악화를 경고했던 시기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뼈아팠고, 그 댓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DHL 성공 방정식, 섬유시장 트렌드 읽어 맞춤형 서비스
DHL익스프레스는 세계적인 물류기업이자,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물류기업 중에 단연 빼어난 활약을 거듭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1977년 DHL은 일양익스프레스의 대리점 형태로 국내 시장에 첫 발을 들였다.

DHL은 국내외로 상업서류를 신속하게 배송하는 서비스를 주안점으로 두었다. 당시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에 따라 무역산업이 장려되었으며, 당시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물품은 서류였다. 물론 상업서류는 DHL이 가진 전통적인 강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경제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고, 상업서류의 양도 한정적이어서 DHL은 가파른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내 시장의 흐름을 읽던 DHL은 섬유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980년대 국내 섬유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해외 수출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섬유 공장은 물론 무역업체들까지 섬유시장에 뛰어들었다.

보통 1개의 아이템에 3~4개의 견본이 만들어졌고, 해외 바이어가 OK사인을 내면 대량 생산과 수출로 이어졌다. 따라서 해외바이어들에게 섬유 혹은 완성된 옷의 샘플을 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상운송으로 보내면 너무 늦고, 해외로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저렴한 운송서비스를 이용하면 분실되거나 손상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 피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

DHL은 섬유시장, 특히 샘플운송에 영업력을 집중시켰다. 소화물국제운송서비스를 막 도입했을 시기였으며, 서류보다 이윤도 좋았다. 공장이나 무역업체들을 찾아다니며 다른 곳보다 배송비가 조금 비싼 편이지만 미국은 2일, 유럽은 3일 내에 파손이나 분실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운송한다는 점을 어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섬유샘플을 받아 대신 포장하거나 대량 발송품의 목재 포장료를 무상으로 서비스하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내 시장의 특성을 읽고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샘플을 보내야했던 섬유 관련 업체들은 너도나도 DHL을 찾기 시작했다.

섬유시장의 성장세를 읽은 것은 DHL이 국내 수출입업계에서 기반을 닦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배송은 DHL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으며, 좀 더 돈을 주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물류서비스라는 인식을 심었다.

만약 성장하는 시장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상업서류 시장에 몰두했다면, 후에 진출한 다른 외국계 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듭했거나, 섬유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한 시장분석 전문가는 “최근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트렌드 파악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트렌드를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자신들의 사업영역에 부합하는 시장과 산업, 아이템들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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