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팔선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플로우비즈 대표

그야말로 속도 경쟁의 시대이다. 1973년 페덱스가 익일배송시대를 열면서 속도 경쟁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비슷한 때에 설립한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도 저가에 쾌속의 항공 서비스를 공유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물리적인 속도 경쟁이 지금 다시 불붙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 경쟁은 물적인 흐름(物流)을 관리하는 업종이 아닌 아마존 등의 유통업에서 그 바람이 먼저 불고 있고 이제는 너도 나도 속도가 최선인 양 시간 단축을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기저기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빠름의 역효과…참을성 없는 고객 양산
그런데 문득 ‘속도 경쟁만이 최선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모든 고객들이 빠른 속도를 바라는 것일까? 그리고 모든 제품들을 그렇게 빠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고객들의 서비스 수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고 그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Value Chain) 구성원 중 누군가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디지털 디바이스의 발달이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몇 개도 기억 못하는 디지털 치매자들을 양산했던 것처럼, 이러한 속도 경쟁은 느림의 미학을 져버리고 참을성이 없는 고객들을 대거 양산하는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까?

소비행태가 과거의 오프라인 기반에서 온라인, 그리고 모바일 환경으로 확장되고, 고객의 구매의사결정 과정이 이러한 모든 채널들을 넘나드는 옴니채널(Omni Channel) 환경으로 변화되면서 제일 먼저 부각된 것이 온라인 유통과 오프라인 유통의 직접적인 경쟁 양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아마존과 월마트가 서로 전쟁을 선포하고 아마존은 오프라인 기반을, 월마트는 반대로 온라인 기반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또한 온라인 업체들은 아마존처럼 오프라인 기반을 강화하고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상호 타협 없는 경쟁의 끝은 과연 어디고 이러한 경쟁 상황에서 최종 고객들은 과연 행복할까?

모든 가치사슬 단독 제공은 지나친 욕심
점점 복잡해지는 경영환경 속에서 한 기업이 모든 가치사슬의 구성요소를 다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몇 기업들의 전략을 엿보면 자기 본연의 핵심 경쟁력 강화는 잠시 미뤄두고 가치사슬의 다른 구성요소에 더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많은 혁신적인 모델들이 찰나처럼 나오고 사라져 갔다. 과연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러한 속도경쟁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모델의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고 고객들이 피로감을 느낄 경우 여기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하지만 한 기업 단독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모든 가치를 다 제공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은 아닐까? 그것보다 정말 우리가 가장 잘하는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조금 부족한 부분들은 파트너십을 통해 해결하면 안 될까?

바람직한 옴니채널 전략은 ‘협력’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옴니채널 전략도 온라인 기업들과 오프라인 기업들의 직접적인 경쟁이 아닌,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협조하는 상생 모델을 통해 구축하면 안 될까? 물론 미국의 두 유통공룡인 아마존이나 월마트는 충분한 자금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온-오프라인과 업종을 뛰어 넘는 독자적인 전략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기업들도 마치 그것만이 정답인 양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일까?

Bain & Company의 전략 컨설턴트인 크리스 쥬크(Chris Zook)는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신 사업을 추진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자사의 핵심역량을 무시한 채 무모하게 ‘White Space1)’만을 찾는 것이며, 그보다 자사의 ‘Hidden Asset2)’을 찾아 거기에 집중하고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White Space : 기업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로 정의되거나 해결되지 않는 잠재적 활동범위. 즉 기업의 핵심 영역 밖에 있고 이를 공략하기 위해선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기회의 영역.
2) Hidden Asset : 기업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산 가운데 지금까지 그 가치나 특성, 또는 잠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거나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

최근 옴니채널 또는 O2O(Online to Offline) 사업을 확장하려는 국내의 온-오프라인 기업들을 보면 오프라인 기업들은 온라인 채널 확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온라인 기업들은 자사가 물류와 오프라인 유통을 직접 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다음 카카오 역시 관련 신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지만 여타 기업들의 전략과는 달리 철저히 자사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존의 온-오프라인 업체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들과의 협업 및 연계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각 기업들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경영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다음 카카오의 사업 방향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고 당분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급자 관점 아닌 철저한 고객관점에서
이제라도 기업들이 공급자 관점이 아닌 철저히 고객들 관점에서 가치사슬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급사슬 전체의 단절 없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고객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옴니채널 환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이러한 온-오프라인의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잠시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방향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콩다방이나 별다방에 가서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 이러한 고민의 시간들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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