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당하면서 돌아서서 누군가에게 갑질 반복

최근 ‘갑질’ 논란으로 온 사회가 시끄럽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이가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 행사하는 부당한 행위인 ‘갑질’이 최근 사회 전반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을 비롯해 땅콩 회항, 백화점 모녀 사건 등의 ‘갑질’ 횡포에 국민들의 분노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그릇을 집어 던지며 폭행하고 마트 보안 요원을 폭행하는 등 사회 곳곳에서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이는 물류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산업군보다 다양한 갑질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물류업계다. 물류기업을 향한 화주기업들의 갑질, 하도급업체들을 향한 물류기업들의 갑질, 택배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들의 갑질, 현장근무자들을 향한 인력공급업체들의 갑질 등 다양한 갑질이 횡행하는 곳이 바로 물류업계인 것이다.

물류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때론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인 경우도 있다. 그만큼 ‘갑질’ 횡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물류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특정한 곳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갑질은 물류산업의 발전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물류산업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매출 수 조원의 글로벌 물류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국내 물류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도 바로 곳곳에서 발생하는 ‘갑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물류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산업 자체를 저평가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물류산업이 3D업종, 기피업종으로 분류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다양한 갑질에서 비롯된 열악한 환경으로 진입을 희망하는 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물류산업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랜 관행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된 물류산업 내 갑질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행위가 갑질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당하는 이들 역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갑질을 정당한 행위이자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은 향후 물류업계 갑질이 계속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 물류업계에서 발생한 다양한 갑질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사건들보다 수위가 높은 것들이 많았다. 물류업계에서 발생했던 갑질 횡포와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갑질 행위들을 정리해보았다.

물류기업들의 접대와 화주기업들의 횡포
대부분의 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은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상품을 맡기는 화주기업이 ‘갑’이고, 이를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기업은 ‘을’에 해당한다.

물류기업들은 항상 자신들을 ‘을’이라고 말한다. 물량을 제공하는 화주기업이 ‘갑’이라면 이를 받아서 수행하는 자신들은 ‘을’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들의 얘기로, 갑의 등살에 못살겠다고 강조하곤 한다.

얼마 전 한 대기업 물류회사는 화주기업의 갑질 아닌 갑질로 직원들에게 미역국을 판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조업체도 아닌 물류기업이 직원들에게 미역국을 팔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직원들에게 판매한 미역국은 온도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화주기업이 상품 인도를 거부한 상품으로, 불가피하게 이를 구매한 물류기업은 직원들에게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화주기업들이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물류기업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실시된 재고 실사에서 발생한 분실 상품은 대부분 물류기업들이 변상하곤 한다. 물류기업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물류기업들은 화주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거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물류기업들은 간과 쓸개를 빼줘 가면서 화주기업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건 대부분 입찰제안 요청서다. 계약 만료 시기가 되면 화주기업들은 기존 업체의 서비스가 좋다고 해도 다른 업체와의 입찰을 진행한다.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다. 이때 화주기업들은 기존 서비스 제공 물류기업이 투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건 너희들 사정’이라는 게 대부분의 화주기업들의 인식이다.

과도한 투자, 리베이트 요구하는 갑사 많아
화주기업들의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갖은 방법을 통해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물류기업에게 과도한 투자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말 한 제조유통업체의 물류아웃소싱을 수주한 한 물류기업은 이 업체의 물류 효율화를 위해 수십억 원의 물류설비를 도입했다. 표면적으로는 물류 효율화를 위해 물류기업이 도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량 수주를 위해 화주기업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화주기업 입장에서는 수십 억 원의 투자비용을 절감하고 물류 효율화는 도모해 두 마리 토끼를 쉽게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최근 이 업체는 화주기업으로부터 수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물류운영이 원활하지 못해 발생한 판매기회 손실 부분 등을 물류기업의 책임으로 전가시킨 것이다. 해당 물류기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거 물류업계에서 리베이트는 당연히 받아도 되는 돈으로 여겨진 적도 있다. 백마진이 성행하고, 부정적인 뒷거래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이런 행위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부에서는 백마진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아예 마진의 40%를 화주기업 담당자에게 상납하는 구조로 형성돼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다수의 운송사 관계자들은 물류기업 담당자들에게 수시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용차가 투입되지 않았으나 용차가 투입된 것처럼 꾸미고 용차 투입 시 발생되는 비용만큼을 물류기업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상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택배를 주로 이용하는 유통업체들에서도 백마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단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택배 건당 얼마씩 리베이트로 받는 경우가 있다.

잦은 폭언과 시비 그리고 폭행
지난 2010년 재벌 2세가 화물차 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으며 피의자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기도 했다.

당시 ‘매값 폭행’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은 물류업체 M&M의 전 대표 최철원씨로, 최씨는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던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기사 유모씨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했다. 그 뒤 그는 ‘매값’ 명목으로 회사돈 2,000만원을 화물차 기사에게 전달했다.

당시 최씨는 정유 운반용 탱크로리 인수대금을 요구하는 유씨에게 ‘돈을 받고 싶으면 맞아야 하는데 한 대당 100만원씩’이라고 말한 뒤 폭행했으며, 야구방망이로 10대를 맞고 무릎 꿇고 울며 살려달라는 최씨를 20대까지 때렸다. 결국 그는 구속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다.

이 폭행 사고가 발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물류 현장에서 폭행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이번 피해자는 용산구에서 활동하는 현대택배 배송기사 장씨였다.

화물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씨는 다수의 보안업체 관계자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소파 앞에서 무릎을 꿇린 채 집단으로 구타를 당했으며 보완업체 관계자들은 볼펜 등을 흉기삼아 장씨를 협박했다. 결국 장씨는 갈비뼈 2개 골절 등으로 인해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화주사에 갑질 당한 물류기업 하도급업체에 ‘갑질’
물류기업들도 갑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류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여러 하도급업체와 상품공급업체들에게 물류기업은 ‘갑’이다. 이들과 거래하는 ‘을’인 하도급업체들 중에는 물류기업들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보는 곳들이 많다. 을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물류기업들이 자신들과 거래 중인 을 기업들을 수직적, 종속적 거래 관계로 인식하고 시건방진 태도로 임하는 것에 대해 관련 업체들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택배업체의 터미널에 인력을 공급하는 한 도급업체는 지난 12월 한 달에만 6,0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했다. 당초 물류기업이 제시했던 기준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자동화설비 능력과 불합리한 물량 계약조건 등으로 운영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하도급업체는 물류기업에게 수차례 공문을 발송해 개선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물류기업은 묵묵부답인 상태이다. 그나마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면 업체를 변경해도 되겠냐’는 얘기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물류기업들의 갑질 횡포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업체들은 수시로 운임을 낮추려는 물류기업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물류기업들은 수시로 협력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다른 업체의 견적 내용을 보여주며 압박하거나 접대를 강요하고 있다는 게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물류기업들의 갑질에 하도급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가를 낮춰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협박으로 인해 택배회사와 거래하고 있는 한 송장업체는 지난해에만 두 번이나 가격을 인하했다. 1년 계약기간동안 계약된 금액이 두 번이나 낮아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으로 계약을 유지해온 한 송장업체는 올해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계약을 맺고 있는 택배업체가 대주주 등과 관련 있는 이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려고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거래 유지를 위해 갖은 횡포를 참으며 지냈지만 헌신짝이 돼 버려지는 꼴이 되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물류기업의 잘못을 하도급업체 책임으로 전가하고, 피해액 변상도 하도급업체에게 떠넘기는 불공정 거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금액인 경우도 많아 도산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실제 택배업체 분류터미널에 인력을 공급하던 한 중소기업이 상품 파손에 대한 택배업체의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 파산한 사례가 있다. 개인 파산까지 당한 중소기업 사장이 가족과 생이별한 후 노숙자로 전락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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