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표준계약서 A부터 Z까지

물류업계의 해묵은 문제 중 하나는 공정한 계약이며, 그 핵심은 운임이다. 그러나 많은 물류업체들은 계약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물류업체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실어 나를 수 있는 화물이 필요한데, 이를 쥐고 있는 화주업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원하기 때문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공정한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 것은 곧 제대로 된 운임이 책정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물류업체의 수익성 저하는 물론 물류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물량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계약에 응해야 한다는 푸념은 물류업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다.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진 일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최근에는 공정한 계약이 체결됐다는 소식도 간간히 들리고 있다. 그 기반은 바로 표준계약서다. 그러나 물류업계에서 표준계약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물류신문은 표준계약서의 주요 내용과 미래,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지난 7월 18일과 22일 부산상공회의소와 서울 무역센터에서 특별한 설명회가 열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표준계약서 우수사례 홍보설명회’는 표준계약서를 잘 모르는 화주·물류업체 관계자에게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실제 적용된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현장의 관계자들은 여전히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물류업체도 화주업체도 표준계약서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표준계약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보여줘도 세심하게 보지 않는다. 조금 살펴보다가도 이전처럼 계약하자는 말을 듣기 일쑤다. 사실 물류쪽에서 근무하는 나 역시 표준계약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분쟁 개선 위해 마련
지난 2012년 ‘화주·물류기업 공생발전 협의체’가 의결한 표준계약서는 계약관계의 절차와 책임을 명확하게 정의함으로써 불필요한 분쟁과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총 20페이지에 달하는 표준계약서는 육상운송(26개 조항)과 3자물류(17개 조항) 분야에 대한 계약 기준이 기술되어있으며, 계약의 성립조건과 변경, 업무(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 운임의 결정 등의 내용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은 지난해 발표된 ‘화주기업·물류기업 상생거래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우선 계약 시 서면을 작성할 것을 강조한다. 구두로 계약한 뒤 별도의 추가 물량을 수행하도록 요구해 분쟁을 일으키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특히 서비스 품질 관리방안이나 계약해지의 근거, 면책사유, 화물의 수령과 회수 등은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있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 등 민감한 내용에도 기준 제시
‘육상화물운송 표준계약서’에서 눈여겨볼 항목으로는 우선 ‘계약의 변경’을 들 수 있다. 물류업체와 화주업체는 계약 변경 시 반드시 기명날인한 변경합의서를 작성해야 하며,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을 경우 변경합의서, 본 계약서, 운송명세서, 부속합의서(요율표) 순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업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계약 가운데에는 구두로 맺거나 끝부분에 사인한 견적서를 주고받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소규모 운송사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이는 운송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분쟁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불씨가 된다.

표준계약서는 이러한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운송업무 과정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우선 물류업체는 화물을 수령하는 즉시 외관상 하자 등 상태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을 때는 수령 시간을 기준으로 6시간 내(생·동물은 1시간 내)에 화주업체에 통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약 화주업체가 운송이 종료된 화물의 훼손을 발견할 경우도 같은 시간을 적용하되, 즉시 발견이 어려운 경우 수령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알려야 한다.

물류업체와 화주업체 간 계약 과정에서 다소 민감한 사안은 역시 운임 산정과 지급 방식이다. 표준계약서는 분쟁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운임을 책정할 때는 운송요율표를 따르되, 유가 상승 등을 감안한 내용을 협의하여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또한 화주업체는 매달 말일까지 실적을 계산해 다음달 10일까지 운임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며, 대금은 현금으로 처리하고 지연 시 이자를 지급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운송요율을 정할 때에는 통상 단가보다 낮은 금액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계약 체결 90일 이후부터는 원재료의 가격변동이나 운송구간 추가 등의 사유가 발생할 때 요율을 개정할 수 있다. 만약 30일 간 요율 개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한다.또한 물류업체는 품질관리 활동을 해야 하며, 노선 등을 변경할 때에는 화주업체의 승인이 필요하다.

3자물류 서비스도 내용은 육상운송과 거의 같으나 몇 가지 세부항목에서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운임을 익월 14일에 청구하고 익월 말 이전에 지급하도록 명시한 것과 화주업체의 동의 없이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줄 수 없도록 하여 다단계 영업을 방지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표준계약서는 물류시장의 공정거래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계의 기대감도 컸다. ‘화주·물류기업공생발전 협의체’에서 나온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보급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표준계약서의 활용률은 낮은 편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6월 한국물류산업정책연구원을 통해 물류업체 300여개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표준계약서의 현장 도입률은 화주업체 8.2%, 물류업체 9.1%, 인지도 조사에서도 알고 있다는 답변이 각각 16.4%와 22.2%로 나와 물류업계의 기대에는 다소 모자란 수치를 보였다.

권고사항의 한계
표준계약서의 모급이 더딘 것은 태생적으로 법적 강제성이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계약서는 권고사항이어서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게다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물류비를 절감해야 하는 일부 화주업체들은 표준계약서를 적용하자는 물류업체의 제안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결국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운임 절감, 구도 계약 등을 대체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강제성이 없으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봐야 한다. 대형화주는 물론 중소화주들도 강제성이 없으면 예전처럼 하자며 운임을 깎자고 나온다.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면 물류업체를 바꾸겠다고 한다”며 “물류업체를 바꾸겠다는 으름장은 매년 겪는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매년 똑같은 일인데도, 바뀌지 않는다.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표준계약서를 제시하지 않겠다는 영업맨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화주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 관계자는 “우리도 물류비를 올려주고 싶다. 상생하자고 말은 많지만, 위에서는 무조건 깎아오라고 하는데, 담당자들도 방법이 없다. 바쁜데 새 계약서를 숙지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다”면서 “표준계약서의 취지를 살리려면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화주업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당장 매출을 올려야 하는 업체들이 스스로 만들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지속적인 홍보와 윗선의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준계약서를 위한 방안들
국토교통부는 표준계약서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표준계약서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홍보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우선 표준계약서의 일률적인 도입을 강요하기보다 핵심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도록 유도하고, 준수여부를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모니터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표준계약서 등 공생방안을 실천한 업체를 표창하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인증 평가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는 인센티브의 경우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물류서비스 발주 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는 내용도 추진된다.

국토부는 이러한 방안을 실시하기에 앞서 오는 11월부터 2개월 간 표준계약서 실태를 조사하고, 지원 확대 등 공생방안을 보완할 수 있는 내용도 검토 중이다.

한편, 육상과 3자물류를 제외한 해운, 항공, 특송 등 다른 분야에서도 표준계약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항공과 특송은 항공법을, 해운선사는 해운법의 적용을 받는다. 즉, 현재의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던 협의체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국토부는 표준계약서가 바람직한 제도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공감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없지만 검토할 것으로 계획이다.

표준계약서 사용 우수사례 | 삼영물류-한국후지제록스

국토교통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로부터 우수한 표준계약서 활용 사례로 선정된 삼영물류(대표 이상근)와 한국후지제록스(대표 우에노 야스아키)는 표준계약서를 통해 투명하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했다.

지난 2013년 양 사는 물류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생협력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크게 5가지(물류혁신, 투명성 확보, 리스크 분담, 친환경·사회, 인력교류) 부문으로 정리되는 협력방안은 표준계약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서면계약서를 통한 계약 체결(서비스 내용과 요율을 표준계약서에 명시한 방식으로 작성)과 ‘상생거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로 합의한 것을 들 수 있다.

리스크 분담의 경우 표준계약서에 명시한 것과 같이 유가변동에 따른 유류비 반영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외에도 물류혁신을 위해 △양사가 공동의 중장기 물류전략을 수립하고, △허브 확장과 이전, 수배송시스템 개선 등으로 물류 최적화에 노력할 것과 △체계적인 서비스 품질 관리와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친환경을 위한 △녹색물류 실현과 △사회공헌활동, 인력 교류를 위한 △인력 전원승계, △교육 및 인재양성 도 포함되어있다.

화주가 표준계약서 활용 의지 보여
특히 눈여겨볼 것은 화주업체가 표준계약서의 이용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이다. 삼영물류와 한국후지제록스는 표준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물류계약 변경 시 합의서를 작성하는 등 관련 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는 불명확한 거래 관행에 따른 분쟁의 위험을 배제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이외에도 양 사는 고객 클레임으로 인한 반송비와 포장비, 화주사의 요청으로 발생된 차량의 설비 비용(GPS 등) 등의 부담 주체를 정하고 서류에 명시함으로서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계약을 만들어나갔다.

매 분기마다 기준 유가를 선정해 유류비 변동이 발생할 경우 이를 물류비에 반영하도록 한 것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양 사는 물류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고, 전략적 파트너로서 상호 협력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유류비 부담을 합리적으로 해소하여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서비스 품질 저하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계약 체결 이후 물류효율성 대폭 향상
표준계약서를 통한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은 적극적인 대화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졌다.

거점최적화를 통해 중앙 허브물류센터에 재고를 집중시켜 약 10억 원의 재고 비용을 절감했고, 통합공동배송시스템을 구축해 정기 배송지역을 6곳이나 늘리기도 했다. 또한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배송직원들에게 운임의 10%를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한국후지제록스의 배송업무 교육을 받도록 유도해 고객 만족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삼영물류에 따르면 한국후지제록스는 표준계약서를 통한 협력 관계 구축 이전(2006년)보다 매출액 27.7% 증가하고, 3PL물류비 상승은 단 1%로 억제하는데 성공했댜(2012년 기준).

전문가들은 표준계약서를 통한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이 삼영물류의 어깨를 가볍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임직원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한국후지제록스는 무리한 물류비 절감 대신 표준계약서를 활용해 효율을 크게 높이는 정도 경영을 실천했다.

삼영물류 관계자는 “불필요한 분쟁 요인을 배제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투명하게 개선함으로써 양 사는 서로 발전에 기여하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갖게 됐다”며 “이번 사례는 화주업체와 물류업체가 자발적으로 상생의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다. 2013년에 맺은 계약에서는 상생거래 가이드라인을 적극 활용해 물류환경의 트렌드를 반영했다. 이번 사례가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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