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학 전공 1세대로서 저변 넓히고파”

한국교통연구원(KOTI)은 국내 유일의 교통·물류분야 국책연구기관이다. 이곳의 수많은 연구원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는 정부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미나 참여와 자료 배포 등 대외 활동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노홍승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물류업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연구원으로 손꼽힌다. 그의 연구 범위는 육상운송과 항만, 철도 등 물류 전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하며, 각종 연구자료 발표와 기술 세미나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해양대와 인연…숙부 권유로 물류 접해
노홍승 위원은 부산 사나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지역 내 명문인 동성고등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왔다. 그가 처음 물류를 접한 건 대학시절이다. 원래 러시아어를 전공하려고 했던 노 위원이 해양대로 방향을 바꾼 건 숙부의 조언 때문이었다.

“신정 연휴 때 숙부님이 우리집에 오셨다. 숙부님은 차이나쉬핑의 한국사무소장을 지낸 해운인이셨는데, 해운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이런 분야가 다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명 깊었다. 마침 가족나들이를 태종대로 갔는데, 거기서 나눠주던 해양대 원서를 받았다.”

며칠 동안 고민하다 해운경영학과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에는 선생님들이 설득에 나섰다. 경영학과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갈수도 있다는 말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날의 선택은 노홍승 위원을 물류의 길로 이끌었다. 해운경영에서 항만물류까지 학부부터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교재가 없어 외국서적을 읽어야 했던 시기, 과정은 힘들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공무원 접고 떠난 영국 유학
잠시 부산발전연구원에 있던 노홍승 위원은 1998년 부산시청 정책개발실로 자리를 옮겼다. 노 위원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올렸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부산을 상징하는 단어인 ‘해양수도’를 만든 것과 항만농수산국(지금의 해양농수산국) 신설에 기여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해양수도는 부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이 보장됐지만, 그는 좀 더 공부를 하겠다며 영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아내와 두 명의 아들도 함께 했다. 유학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에 집중하는 길 밖에 없었다. 웨일즈 대학에서 물류관리학과 물류산업정책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해운으로 시작해 항만, 물류, 물류정책으로 그의 연구범위는 더욱 확장됐다. 바쁜 와중에도 건설교통부 물류혁신본부 물류정책팀 정책자문관등을 맡으며 국내외에서 연구활동을 병행했다.

“나는 박사 때 항만물류를 하고, 부산시에서는 항만정책을 했다. 바다에 있다가 육지로 올라온 셈이다. 항만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배후단지를 만들어야 하고, 물동량은 제조공장에서 창출된다. 전체 시스템을 보려면 해운과 육상을 같이 봐야 한다. 이것이 SCM 전체를 살펴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원양해운에 관심을 두었지만 항만과 육상으로 옮겨지면서 학문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던 것 같다.”

노홍승 위원은 2006년 여름에 귀국해 KOTI에 자리를 잡았다.

연구단 이끌고 혁신기술 개발 매진
노홍승 위원이 KOTI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정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제정안 2건(이 중 1건은 채택되지 않았다)을 만들었고, 8건의 부분개정안을 냈다. 국가물류기본계획에 참여했고, 정보시스템에도 참여했다. 그의 연구과정은 대부분 물류비용을 줄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물류비 1%를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름을 조금만 줄여도 1%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이마저도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스템적으로 1%를 줄여야 모든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물류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걸 구현하는 것이 나와 같은 연구자들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노 위원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연구단을 이끌며 물류혁신을 위한 기술개발에 노력할 예정이다. 개발과제들은 물류비를 절감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작은 부분에서 조금씩 절감해 전체적으로 10%~15%까지 줄일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국토부에서도 상당부분 예산을 배정할 계획에 있다.

물류업계에 서비스R&D 개념 내세워
노홍승 위원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연구 테마는 서비스R&D다. 서비스R&D는 그가 처음 쓴 용어다.

“이 용어를 만들고 그 뜻을 정의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제 막 시작한 셈인데, 앞으로 이 분야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산업 중에 R&D가 필요 없는 분야는 없다. 물류산업도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이 발굴되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적다. 물류산업의 영업형태는 대부분 가격경쟁이고, 로비다. 국내물류라면 모르겠지만, 국제물류라면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 내가 발전시킬지, 다른 연구자가 발전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키워야 할 연구과제라고 확신한다.”

노 위원은 KOTI 물류기술연구센터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KOTI가 정책연구기관이지 기술개발기관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 위원의 생각은 다르다.

“KOTI가 기술개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KOTI는 최근 10년 간 기술개발도 계속 해왔다. 정책과 기술은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니다. 함께 가야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이번에 내가 연구단에 뛰어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그가 주안점을 두는 것은 위험물 운송에 대한 기술이다.

“물류비를 아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위험물은 물류비를 아끼는 것보다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위험물은 운송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이 죽는다. 이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해서 좋은 것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위험물 운송에 대한 기술 개발은 기회가 되면 계속 연구하고 싶다.”

신뢰를 쌓는 것이 연구원의 일
노홍승 위원은 연구소와 집을 오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참 젊었을 때는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일주일 내내 일해왔다. 그 사이에 발표한 논문과 각종 보고서는 100편이 훌쩍 넘어갔다. 대학 강의도 나가고, 학회와 연구회, 국가정책연구분야의 일도 맡고 있다. 그의 물류강의는 건설교통부장관 표창, 국무총리실장 표창 등 수상경력도 많다.

남부러울 것 없는 연구원으로 보이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짬이 날 때마다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나름 애쓰고 있다며 멋쩍어했다. 그는 고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얼마 전에는 함께 PC방에 가서 함께 게임을 해보기도 했단다.

노홍승 위원의 연구철학은 약속과 사명감이다.

“연구원은 소명의식이 높다고 생각한다. 가진 지식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국책연구원이 아니라 기업체 같은 직장에 있었을 것이다. 연구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다. 믿고 존중하는 시각이 있어야 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연구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류전공자 1세대로서 사명감을 느낀다. 물류는 점점 더 중요해지는데, 인식은 낮다. 저변을 더 확대시키는 것이 내 역할이다.”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