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타수(打數)를 가리키는 용어의 의미들

△반취 이기윤
소설가 / 골프킬럼니스트
테니스 경기의 스코어는 1, 2, 3, 4가 아니다. 15, 30, 40, 게임(game)이다. 0도 ‘제로(zero)’가 아니라 ‘러브 (love)’라고 부른다. 재미있다 할까 괴상하다 할까? 사연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현대 테니스는 약 130년 전 북 웨일스 출신의 윙 필드 육군 소령이 인도에서 복무할 때 코트의 규격과 게임의 체계를 만들어 보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의 효시는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라뽐므(La Paum)’이다. 유럽인들이 즐기던 옛 테니스 게임이 채택한 스코어링 시스템이 곧 ‘15, 30, 45, 게임’ 하는 방식이었다. 현대 테니스와 다른 것은 세 번째 포인트가 40이 아니라 15의 배수인 45였다는 점이다.

한 포인트를 이렇게 15점 단위로 매긴 이유는 천문학 선호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천체를 관측할 때 쓰던 기구 중에 다리가 60도까지 벌어지는 콤파스(육분의)가 있었는데 이 원의 6분의1 개념을 테니스 경기에 적용한 것이다. 한 경기를 6세트로 정함으로써 ‘60도 짜리 조각 6개를 맞추어 온전한 360도 원을 만드는 사람이 승리자’라는 논리를 만든 것이다. 각 세트가 다시 4게임으로 구성되는 것은 60도 짜리 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5도 짜리 조각 4개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5점 단위가 탄생한 것이다.

세 번째 포인트 45를 40으로 바꾼 이유는 발음상의 편의 때문이었다. 심판이 스코어를 소리쳐 선언할 때 ‘45(fortyfive)’는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숫자와 헷갈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45 대 30 (fortyfive-thirty)’이나 ‘40 대 30(forty-thirty)’을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0을 제로가 아닌 ‘러브(love)’라고 부르는 것은 ‘달걀’을 뜻하는 프랑스어 loeuf(뢰프)에서 온 것이다. 달걀의 타원 모양이 우주의 프랙털임을 상기하면 의미가 꽤 깊은 용어가 아닐 수 없다.

골프의 타수에 붙여진 용어들도 의미가 만만치 않다. 기준타수보다 적은 점수를 가리키는 용어는 모두 새와 관련이 있다. 1타 적을 경우에는 ‘버디(birdie)’라고 하는데, 이는 자그마한 새의 총칭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2타 적은 경우는 이글, 즉 독수리이다. 3타가 적으면 알바트로스. 바다갈매기 중에서 가장 높이 나는 영험한 새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티(tee)와 그린(green) 사이의 잘 깎인 잔디 지역을 페어웨이(Fairway)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골퍼는 없을 것이다. 페어웨이는 바다 항로, 즉 바다를 일컫는 단어이다. 바다 위를 나는 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페어웨이를 나는 골프공을 새로 여긴 것이다. 공이 어떻게 날아가느냐에 따라 보통의 귀여운 새도 되고, 이글(독수리)도 되고 알바트로스도 상상이 되는 것이다.

로마 신화의 영향 하에 있는 유럽에서 독수리는 신적인 존재였다. 창공을 나는 위용은 가히 하늘의 제왕이었다. 하늘 위에서 인간을 내려 보며 날아다니는 독수리는 신들이 변신한 것으로 여겨졌다. 가장 강하고 위대한 신인 제우스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신이자 변신모습이었다. 따라서 골프 타수를 일컫는 용어 이글에는 ‘신의 도움’을 받아 희망을 달성했다는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독수리(eagle)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의미를 달리(추가)한 감은 있다. 미국이 독수리를 휘장으로 선택한 것은 모국인 영국을 넘어서겠다는, 마치 로마의 부활처럼 비상과 우뚝 솟음을 염원하는 마음에서였다. 독수리가 빠르고 냉철한 판단으로 사냥하는 생태도 한몫 했다. 사냥감을 선택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는 독수리의 기질은 프로골퍼들에게 승자의 꿈을 키워주는 자극제였다. (또한 독수리 휘장은 우리나라 경찰은 물론 세계적으로 국가 안보나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많이 쓰고 있다. 빠르고 냉철한 판단으로 선택한 사냥감을 정확하게 잡는 독수리를 본받자는 의미와, 큰 날개로 안전하게 국민을 위협으로 부터 품어 안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Albatross)는 비행하는 모습이 하늘의 신선을 닮았다하여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불린다. 다우위다우(센가쿠열도)처럼 사람의 발길이 없는 외딴 섬에서 번식하며 원양 해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번식기가 되면 항상 같은 짝을 데리고 같은 번식지로 찾아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나그네새로 알려져 있으나 극히 관찰하기 어려운 미조(美鳥)이다. 비행하는 알바트로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하고 우아하다. 한 번에 3,000㎞를 비행하기도 하는데, 신기한 건 날개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한 바람을 이용하여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간 후 아래로 활강하는 방식으로 비행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는 물론이고, 비바람이나 우박, 폭풍 등의 악조건에서도 완벽하게 바람과 조화를 이루며 여러 시간, 심지어는 여러 날 동안 날개를 펄럭이지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나는 새이다.

하늘에서의 이들은 매우 아름다워서 선원들은 이 새를 일컬어, 바다에서 길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죽은 선원들의 영혼의 화신이라 여겼다. 알바트로스는 그렇게 바다에서는 최상의 찬사를 받지만 육지에서는 둔하고 서툰 모습만 보여 바보새라고도 불린다. 보들레르의 시에 알바트로스의 이중적 모습이 잘 담겨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혹시 골프코스에서는 생기 넘치고 펄펄 나는 골퍼가 도시의 일상에서는 더없이 무력감을 보이는 주변의 그 누군가가 연상되지는 않을까?…

기준 타수보다 덜 치는 것에는 새 이름을 붙였지만 반대로 더치는 것은 보기(bogey)라고 했다. 스트로크 하나가 많은 때는 bogey, 둘은 Double bogey, 셋은 Triplet Bogey, 넷은 Quadruple Bogey 등으로 부른다. 보기(bogey)는 영국 각지에 살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요정의 총칭으로 이것저것 인간의 일에 참견하고 때때로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유령 같은 존재이기에 정해진 모습은 없는데 인간 생활에 흥미가 있어서 언제나 사람 머리 뒤에 떠다닌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꼭 뒤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보기의 존재이다.

운명의 여신을 일컫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된 요정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였으나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강·샘·언덕·숲 등에 사는 아름다운 님프도 요정이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의 모습을 한 세이렌(Seiren)도 요정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골퍼에게 잡생각을 하도록 장난치고 유혹하여 집중력을 훼방시켜 기준타수보다 더치게 만드는 것을 재미(?)로 여긴다. 그래서 당하는 그 순간은 보이기만 하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미운 보기들이지만, 아무도 이를 미워하지 않고 또 미워할 수만도 없게 되는 것이, 큰 틀에서 골프의 즐거움에는 동참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기준 타수(Par)와 성적이 같으면 이븐(Even)이다. 매치플레이에서 상대와 동점이라는 말인데 이것도 Par를 의인화(擬人化)한 상대성 용어로 볼 수 있다. 프로골퍼 세계에는 전설적으로 유행하는 주문이 있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 라운드를 할 때, 한 홀을 마칠 때마다 그린에 대고 “You can’t par with me.(넌 나와는 상대가 안 되지)”하고 기를 죽이는 한마디를 속삭임으로 남기고 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Par를 이겨 나의 공이 버디가 되고, 이글이 되고, 알바트로스가 되어 나를 태우고 창공을 위용 있게 날아 주기를 바라는 주문인 것이다. 기준타수보다 덜치는 언더파(under par)는 이렇게 모든 골퍼의 꿈이다. 그런데 sex에서는, 사내가 일방적으로 너무 일찍 끝내 버리는 경우, 여자들이 “He is Under Par”라 부르며 비아냥거린다는 것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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