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의 비결 ⑧

기적 같은 장타를 위해, 또한 진정 건강한 인생을 위해 안정된 호흡의 중요성을 이해하였다면 이제 기(氣)를 이해할 차례이다. 고대 동양철학에서는 기본적인 개념으로 기를 숨(息)이나 바람(風) 정도를 뜻하는 가벼운 의미로 여겼었다. <설문해자(設文解字)>는 기를 운기(雲氣)라 풀고 있는데, 은·주 시대에는 바람이나 구름을 포함하여 기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상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천기(天氣)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결합하여 곡물이 생장함을 이해하였고, 나아가 동물은 식물의 생명력을 소화·흡수하는 것으로 활동력을 얻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차츰 생태계 일반을 두루 관통하고 있는 우주적 생명력이 ‘기’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한민족 최고(最古)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서도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이 기(氣)가 충만해져 천(一) 지(二)가 나누어지고, 인간(三)이 탄생했으며, 세 가지 기의 취산에 의해 만물의 생성과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했다.(大三合六生七八九) 자연계의 모든 것을 생성시킨 생명과 물질의 근원인 동시에 동적 에너지도 되는 것을 ‘기’라 한 것이고, 나아가 모든 존재현상은 기의 취산(聚散),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도가(道家)의 창시자인 노자는 ‘기는 생명이나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해명할 수 있는 사고의 중심’이라고 해석하면서 교리의 이상적 관념인 도(道)를 원기(元氣)라 하였다. 반면 공자는 인간의 생명은 기의 흐름이요, 그것이 피의 순환과 연관된다고 보아 혈기(血氣)라 했고, 호흡이 그 관건이라 보아 기식(氣息)이라 했다. 이에 근거하여 내적 생명의 상태는 자연히 밖으로 드러난다 해서 기색(氣色)·기분(氣分)·기품(氣品)이라는 표현이 있게 되었다. 글에서는 문기(文氣), 글씨에서는 서기(書氣)를 문제 삼은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면서 ‘인간은 혈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기를 생리적 욕구로 여겨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후의 순자(荀子) 역시 “인간과 동식물에 공통된 힘은 기이나,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이성으로 기를 제어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모두 다분히 추상적 견해였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전해지던 기의 개념을 맨 처음 사상적 주제로 삼은 이는 맹자(孟子)였다. 그는 “기는 혈기(血氣)를 근본으로 하며 치기양심(治氣養心)이라는 양생술(養生術)을 수반한다”고 공자의 견해를 응용하였으나 “의지가 굳으면 기를 움직일 수 있다”고 발전된 견해를 덧붙였다. 순수한 감정과 도의적 자긍심을 야기(夜氣)·호연지기(浩然之氣) 등으로 명명함으로써 기에 구체적 이미지를 부여했던 것이다.

6·7세기 이후 불교와 도교가 치밀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기반으로 사상계를 풍미하게 되자, 유학(儒學)도 존재를 위해서는 예의범절을 익히고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포괄적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정비하여야 했다. 12세기에 이르러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 그리고 장재(張載)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이기철학(理氣哲學)의 체계를 세운 사람은 주희(朱熹/朱子1130~1200)였다. 그는 기에 ‘존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라는 자격을 부여하여 자연세계는 물론, 인간의 감정·의지·사유까지 기의 한 계기로 이해하도록 하였다. 포괄적인 하나로 인식되던 기를 음양(陰陽)으로 분화하고, 그것을 다시 오행(五行)으로 나누어 모든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음양오행이 서로 갈등, 조화하는 과정으로 풀이한 것이다.

주희는 이 정합적 질서에 이(理)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기의 운동과 변화에 일정한 질서가 있음을 설파했다. 기는 우주를 주재하는 원리로 흠 없이 선하고 완전하기에 세계는 본래 조화롭고 질서가 잡혀 있다고 정리한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욕구와 의지로서의 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까닭이 있으니, 인간의 표현 전체를 수긍 대상으로 삼으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이(理)를 실현해야 할 이념으로 설정한 다음, 타고난 기질(氣質)을 그에 비추어 제재, 간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자학은 성즉리(性卽理)를 세우고 “기(氣)가 아니라 이(理)가 인간과 만물의 본성을 구성한다”로 변화시킨 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그 구체적 실현이니 그 실현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사의 불합리와 모순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모순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기의 자연적 변화에서 나타나는 질서인 이(理)’와 ‘도덕적 요청으로서의 이(理)’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였다. 이 설득이 성공적이어서 주자학은 오랫동안 관학(官學)으로서 강력한 사회통제의 이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이후의 동양사 상(明淸思想) 주류는 주희가 기질지성(氣質之性) 두 가지를 모호하게 쓰면서 무리하게 연결시킨 고리를 푸는데 주력하며 인간성의 긍정, 개성의 발현을 주창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보니 다시 이보다 기를 앞세우는 사상으로 돌려지기도 했다.

그건 기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 때문이었다. 하나는 주어진 신체를 통해 우주적 역사(役事)에 동참하는 나름의 개성으로서의 기, 또 하나는 도덕적 이념인 이(理)의 실현을 가리고 방해하는 생리적 욕구로서의 기였다. 조선의 이기철학(理氣哲學) 역시 주희가 남긴 애매함 덕분(?)에 양분되고 사분오열 되어 맞서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하나가 퇴계 이황(1501~1570)의 ‘호발설(互發說)’과 율곡 이이의 ‘성심정의일로설(性心情意一路說)’의 대결이었다.

퇴계는 “사단(四端)은 마음속에서 발하고(內出), 칠정(七情)은 밖에서 자극받아 발한다(外感)”고 본 반면 율곡(1536~1584)은 “본성·마음·정·의식 등 인간의 감정은 자극과 반응이라는 단일한 경로에 의해 본성의 이라는 단일한 원천에서 발생한다”면서 기는 발(發)하고 이는 타는(乘) 것일 뿐 본성이란 처음부터 이와 기가 합쳐진 것이기에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은 하나의 길임을 주장했다. (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 데서 비롯된 이러한 이황과 이이의 양보 없는 대립은 나중에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낳았고 동인과 서인 간 당파 분쟁으로 심화되었다.)

간략한 기술로 훑어보았지만 이렇게 기에 얽힌 역사와 배경을 음미하면서 기를 골프에 접목시켜보면, 골프가 모든 사상을 수용하고 드러내는 전천후 스포츠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안에서 우러나는 사단(四端)이라 하는 네 가지 마음 즉,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모두 들어있고, 칠정(七情)이라는 일곱 가지 감정 ― 즉,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이 모두 드러나는 운동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용기(勇氣)·기백(氣魄)·기세(氣勢)·원기(元氣)·정기(精氣)·생기(生氣)·기력(氣力)·기운(氣運) 등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는 말들이 모두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한 번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역사에서 이론으로 기(氣)를 논했던 성현을 모셔서 골프를 하면 실제에서의 기는 어떻게 나타날까. 특히 퇴계와 율곡을 모신다면?…아마도 한 분은 어렵고도 험한 운동이라 하고, 다른 한 분은 쉽고도 편한 운동이라고 할 것만 같다. 아니면 혹시라도 골프에서만큼은 하나로 뭉쳐질까?

어쨌든 독자들은 확실하게 깨닫자.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애초부터 옳은 선택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옳은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이것이 옳다는 식의 왕도는 없다. 선택한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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