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모든 해답이 있다

(주)씨엔아이 로지스틱스 대표이사
첫 단추(고객사 현황 파악)를 잘 꿰는 게 중요

전 회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 같이 물류 아웃소싱을 위한 사전 컨설팅 진행은 물류아웃소싱 대상인 고객사의 현황 파악과 비전 설정 및 솔루션 도출을 위해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현황 파악은 추후 진행될 물류 아웃소싱의 첫 단추를 꿰는 작업과도 같으며 사실 첫 단추가 정확한 위치에 놓이지 않으면 도출된 결과물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결국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산업분야가 서로 다르더라도 물류운영과 흐름의 기본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물류 컨설턴트들은 현황 파악을 진행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의 정형화된 솔루션을 갖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이트와 저 사이트는 통합하고, 이 라인에는 차량을 대형화하고, 이 프로세스는 축소하거나 자동화하여 성력화하고… 등등의 솔루션을 그리면서 현장을 조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에 고객사 일선 현장의 니즈 파악에 소홀해지거나 현장의 소리를 듣더라도 누락, 또는 왜곡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외부의 컨설턴트보다 고객사의 현장(물류, 영업, 고객사의 고객이나 협력업체 등)이 훨씬 더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성이 높은 비전과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들의 소리에 진정성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 뿐이다.

현장의 소리를 담아내고 현장이 참여한 비전 설정과 솔루션 도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간과 자원의 상당부분이 집중되고, 투입되어야만 향후 진행될 물류 아웃소싱이 기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게 성공 할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어느 현장 이야기

물류 컨설턴트의 일방적인 솔루션 제시는 현장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너희 말대로 해서 어떻게 되나 지켜보겠다’는 팔짱 낀 자세를 불러오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솔루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추가 자원(시간과 비용)을 투입하여 겨우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사례를 이야기 해볼까 한다.

십여 년 전 PDA를 물류 현장 피킹(Picking) 작업에 활용한 재고관리시스템 도입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정보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 현장 작업이나 재고관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매일 입고, 출고가 발생하는 천 개 이상의 SKU에 대해 실시간(Real Time)으로 재고를 파악할 수 있는 재고관리시스템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도전이고 모험이던 시절이었다.

수도권에서 원거리에 위치한 지역물류센터에는 증가되는 SKU의 보관 장소 부족으로 창고 스페이스 확장이 시급했고, 수요는 적으나 전략 아이템인 C, D급 상품들의 보관 재고 부족으로 인한 잦은 결품으로 영업사원들의 원성이 증가되고 있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간 재고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군소 아이템들(C, D급 상품들)은 무재고 또는 소량 재고를 유지하면서 매일의 수요만큼씩 공장에서 보충 받는 Cross Dock 운영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당시의 주요 비전 중 하나였고 PDA를 활용한 재고관리시스템 도입이 그 솔루션이었다.

경영층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기세 좋게 원거리 지역 센터부터 솔루션 도입을 시작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보시스템의 초기 불안정은 수정과 보완으로 극복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본사에서 내려 온 어려운 용어를 쓰는 컨설턴트들에게 몇 차례의 교육을 받은 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해오던 피킹 작업과 재고관리 업무를 왜 바꾸어야 하는지 설득이 되지 않는 현장이 가장 큰 난제였다.

만약 본사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현장의 소리를 진정성을 갖고 들으면서 함께 솔루션을 도출했다면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훨씬 원활한 추진이 가능했을 것이며 당초 예상보다 초과하는 자원 투입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겪었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작은 소동도 많았다.
지게차를 타고 피킹 작업 중인 A작업자와 B작업자 간의 대화. “행님(형님), ○○○○ 오데(어디) 있습디까?”, “조오기(저기) 돌아가믄(돌아가면) 마이(많이) 있더라.”

손에 쥐고 있던 PDA를 누르기만 하면 어느 Zone, 어느 Rack으로 가라는 지시가 뜨는데도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또 Rack 앞에 도착하면 반드시 바코드를 읽히고 피킹 후 몇 개를 피킹 했는지 아주 간단하게 숫자만 입력하면 된다고 따라 다니면서 목이 아프게 떠들었으나 작업이 끝난 후 한꺼번에 몰아서 처리하는 오랜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PDA를 사용해서 입력하면 간단할 텐데 왜 하지 않느냐고 하자 현장에서는 잘 안보여서 돋보기를 써야 하는데 바쁜데 언제 그러고 있겠느냐는 웃지 못 할 답이 돌아왔다. 작업자들의 상당수가 초로의 아저씨들이라는 것도 본사에서 설계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물류센터 현장의 조도를 높이고 PDA 화면의 글씨체를 키우는 작업이 부랴부랴 진행되었다.

전국에 산재한 물류센터에 새로운 솔루션 도입을 완료할 때까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시행착오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고 서로 지쳐 갈 즈음에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당초 예상하고 기대했던 결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분명히 탄탄하게 뻗은 대로(大路)를 설계했는데 끝나고 보니 구불구불한 길들로 바뀌어 있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무시한 원래의 설계가 너무 이상적이었다고 자성해야 했다.

현장에서 솔루션과 비전을 찾았더라면 최소한 산과 계곡의 위치는 사전에 감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완전한 실패는 아니고 정보시스템에 의한 재고관리 체제의 도입이라는 과제는 이루었다고 자위하기에는 수업료가 너무 비싼 뼈아픈 경험이었다.

경영층과의 타협…? 잘못된 함정일 수도

컨설턴트들은 고객사 경영층(CEO, COO ,CFO 등)과의 인터뷰에 높은 비중을 두고 경영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비전 설정을 가장 우선시 한다. 물론 필자도 그랬다. 프로젝트의 수주에서부터 컨설팅의 원활한 진행, 최종 결과물의 승인 그리고 이어질 물류 아웃소싱 추진 등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절대적으로 달려있으므로 당연한 일이 기도 하다.

필자가 만났던 수많은 고객사의 경영진들은 대부분 물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물류의 개선이 회사의 수익률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잘 구축된 물류 프로세스가 조달에서 생산, 판매에 이르는 Supply chain의 Backbone이 된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경영층은 물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물류를 단지 비용절감의 수단으로 간주하거나 경영진과 가까운 인맥들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물류 아웃소싱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경영진이 있는 고객사를 만났을 때는 경영진의 요구라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보다는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이 참여한 비전과 솔루션 도출에 집중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웬만한 용기 없이는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수도 있고 설혹 중장기적으로 고객사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솔루션과 비전을 제안하더라도 경영층이 승인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무위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이런 고객사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객사 경영층의 의견과 제안에 타협하는 쉬운 길을 더 많이 갔다. 그러나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 방식을 택하기도 했으며 그런 고객사들 중 오늘날까지도 성공적인 솔루션 구축의 영향으로 시장에서 번창을 누리고 있는 고객사들도 다수 있다.

수 년 전 필자가 물류 아웃소싱을 위한 물류 컨설팅을 진행했던 냉장냉동식품을 제조·유통하는 B기업은 대표적인 두 개의 사업부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사업부는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수익을 내고 있는 반면에 한 사업부는 수 년 동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적자를 내더라도 사업자체를 철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류비의 대폭적인 절감이 필요했으나 경영진과 관련된 특정 고객과의 관계 때문에 수익대비 엄청난 적자를 감수한 물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B기업의 현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런 대책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컨설팅 PM(Project Manager)이었던 필자는 적자의 주요 배경인 특정 거래처와의 거래 단절 및 시너지가 없는 일부 지역 운영부분의 제3자 물류 아웃소싱 등을 제안했으나 차일피일 의사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최근 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B사의 일부 제품들은 결국 사업철수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류비용이 회사의 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여 변화의 기회를 거부한 경영층의 단견이 수백억을 투자하며 고군분투하던 상품을 시장에서 사라지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설혹 예견했다 하더러도 물류 컨설턴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쓰라린 경험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컨설팅의 결과물을 기반으로 물류 아웃소싱을 실현할 때 이상적인 안과 현실의 차이, 컨설팅 과정에서의 사소한 놓침이 야기하는 큰 손실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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