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기준 놓고 수의계약 배제됐던 업체들 불만 표출

국내 5대 발전사(남동, 중부, 서부, 남부, 동서)의 유연탄 하역계약 공개 입찰이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식으로 입찰공고가 나오기도 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수의계약에서 배제됐던 업체들이 입찰 평가기준표의 일부 항목이 공정하지 않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사들은 객관적인 절차를 거쳐 적절한 평가기준을 도출했으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수의계약에서 경쟁 입찰 전환

유연탄을 발전원료로 사용하는 발전사는 국내에 5개사가 있으며, 이들 발전사는 약 10년 간 수의계약을 통해 하역업체를 선정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업계에서는 특정 업체들이 오랫동안 계약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공개경쟁을 통한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유도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왔다.

이에 5대 발전사의 협의체인 발전사협력본부(본부장 박종훈)는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6개 부두 발전용 유연탄 하역업체 선정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지난 8월 밝혔다. 내년 유연탄 하역 시장의 전체 규모는 연간 약 450억~5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추가로 완공될 발전소 규모를 합하면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하역업체들이 이번 공개 입찰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가격 경쟁 아닌 기업 평가

본부 측은 5개 발전사 공통 평가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외부전문기관인 S사에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발전사들은 연구용역의 결과로 나온 평가기준표(100점 만점, 4개 분야 및 6개 결격 사유로 구성)를 가지고 공개 입찰을 통해 평가 점수를 매겨 하역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즉, 가격이 아닌 업체의 역량에 따라 가장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하역업체로 선정될 수 있다. 가격(하역료)은 국토해양부의 항만해역 고시요금이 정해져있어 평가항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발전사들은 지난달 11일 입찰 참여 가능업체(하역사)들에게 세부사항을 설명하는 간담회를 열고 기존 계약이 만료되는 발전사부터 늦어도 연말에는 순차적으로 입찰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일부 하역업체들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실적에 따라 최고 3점 차이 벌어져

논란이 된 부분은 입찰을 좌우하는 평가기준표다. 평가항목은 크게 이행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수행계획 평가로 나뉘는데, 특히 이행실적에서의 점수 차이가 이번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행실적 평가항목은 입찰 참가사의 최근 1년 간 하역실적 중 분야를 나누어 동등 실적과 유사 실적을 제시해야 하는 부분인데, 동등 실적은 석탄과 철광석(1천 2백만 톤), 곡물(2백만 톤)을, 유사 실적은 컨테이너(5백만 톤)와 철재(3백만 톤)에 대한 하역실적을 인정한다.

발전사들은 동등 실적은 배점 한도가 30점, 유사 실적은 27점으로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반발하는 업체들은 동등 실적과 유사 실적의 하역 업무 모두 노하우를 동일하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연탄에 대한 하역 실적이 적거나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컨테이너나 다른 화물의 하역을 오랫동안 했던 경험이 있다. 장비도 한전에서 제공하는 장비를 써야하고, 업무 프로세스에서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1개월 정도의 시범운영기간이면 별다른 무리 없이 작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컨테이너나 철재 하역 작업의 난이도가 석탄이나 철광석에 비해 낮다고 볼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게다가 하역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입찰에서 3점 차이면 사실상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는 점수다. 발전사들이 기존에 하역하던 업체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주는 것이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불만을 표시하는 업체들은 수행계획 평가항목에 대해서도 볼멘소리를 냈다. 이 항목은 유연탄의 하역효율 개선 방안이나 하역특성 이해도, 교육훈련 계획 등을 평가하는데, 유연탄 하역을 진행했던 업체에 비해 새로 진입하려는 업체가 불리한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입찰 시기에 따른 업체 독식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5대 발전사는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달라 개별적으로 입찰을 진행하게 되는데, 발전사 당 1개 기업만 선정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5대 발전사의 물량을 1개 업체가 독식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발전사, 정부 심사기준 따른 것일 뿐

이 같은 논란에 발전사들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평가용역을 맡겼고, 해당 기관에서도 일부 하역업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현장의 의견까지 반영하여 가장 적절한 기준을 도출해냈다는 입장이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입찰 규모가 발전사 한 곳 당 최소 80억 원 이상인 대형 계약이다 보니 이해관계에 따라 업체 간 불만사항이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행실적은 기획재정부가 고시한 심사기준에 따라 유사하거나 대등한 화물에 대한 물량의 실적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새로운 업체가 맡더라도 하역경험이 있어야 원활한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유연탄을 적시에 하역함으로써 발전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기존 업체든 새로 진입하려는 업체든 유연탄 하역에 대한 이해와 업무 프로세스 등 철저하게 준비된 업체가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연탄 하역 경험이 있는 업체들이 업무 역량이 더 높을 수 있겠지만 다른 평가항목도 까다롭고 결격 사유에 대한 심사도 엄격하게 진행하여 감점시키는 등 공정성을 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별적인 입찰 시기에 따른 1개 업체 혹은 상위 업체의 독식 가능성에 대해서는 계약 시기에 따른 문제이며, 법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평가기준 보완 논의 중

취재 결과 최근 발전사들은 평가기준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높아지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당초 11월 중에 진행하려던 입찰도 다소 미뤄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달 간담회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나온 만큼 이를 수렴하여 최대한 공정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발전사들의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전사들은 평가기준에 대한 업계의 불만사항을 면밀히 파악한 뒤 다시 보완을 하는 차원에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된 배점의 방식을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가 기준에 대한 재용역이 있을 수 있느냐는 기자에 질문에 한 발전사 관계자는 “이미 연구용역이 끝난 상황에서 다시 재용역을 발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사항”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에 최근 일부 기업이 국민권익위원회에 평가방식에 대한 불만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발전사들도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아직 세부사항에 대해 공동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이라며 “기존 계약 기간이 올해 안에 종료되는 발전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의견을 조율하여 연말 내 입찰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하역사들도 “평가항목 마음에 안 들어”

유연탄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 기존 업체들도 이번 입찰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일부 업체들은 이행실적에서 유연탄 처리에 대한 노하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신규 진입을 꾀하고 있는 업체들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연탄이라는 게 불순물이나 이물질이 많이 섞여있어 작업과정에서 순간적인 판단이 없으면 기기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 또 현장에서는 유연탄 연속식 하역기(CSU)는 최소한 6개월은 사용해야 익숙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일반적인 곡물이나 컨테이너 등의 하역과는 다른 노하우가 필요한 만큼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장비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노하우는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작업이 까다롭기 때문에 현장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신용평가 등급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도 피력했다. 이 평가는 등급별로 0.5점씩 차이를 두는데, 자본금이 적은 업체라도 등급만 우수하면 점수 차이가 적지 않게 난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대다수의 국내 하역업체들이 다른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준수한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며 다른 입찰 건에서는 참가 자격 정도로 이용되는 신용평가 등급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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