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의 비결 Ⅳ

글 : 반취 이기윤
소설가 / 골프칼럼니스트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말이 있지만 천부경(天符經)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대목에서 이를 부정한다. 인간은 하나하나가-하늘과 땅의 정기가 차고 넘쳐(一積十拒無櫃化三) 나타난-우주의 프랙털이요, 곧 독립된 우주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원리(原理)는 여기에 있다. 함께 생활하는 것 같은 지연 학연 혈연 ? 심지어 한 집에 사는 부부나 자식까지도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개체의 집합이니,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있는 세상의 중심은 나요, 그대가 있는 세상의 중심은 그대이지 나나 그대가 보다 큰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이다. 내가 중심인 세상은 내 삶이 다하는 순간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희생한다거나 누구의 비위를 맞춘다거나 따위 사고방식은 애당초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변명에 불과하다. 누구를 모신다는 것도 결국 자기를 위해서 선택하는 행위이다. 근본을 이야기 하면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인간을 우주의 프랙털이라고 했다. 무한한 우주의 현상이 태양계에 있고, 태양계의 현상이 지구에 담겨 있고, 지구의 여러 현상들이 인간의 몸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숫자로 열거해 보면 몸에 5장6부가 있듯 지구에는 5대양 6대주가 있다. 1년이 365일이라면 몸의 경혈이 365개이다.
(경혈은 신체의 표면에 있는 침·뜸·부항 치료의 자극 점으로서 경락 (經絡)상에 있어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에 알맞은 자리를 말한다. 이는 인체의 중요한 기초적 물질인 기(氣)와 혈(血)이 지나는 통로인 경락을 따라 신체의 바깥 부분에 위치하는데, 기(氣)가 모이고 출입 하는 곳이라 하여 혈(穴/구멍)이라 한다.)

▲ 프랙털의 예시.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논란과 같이 작은 것(프랙털)이 합쳐져 큰 것이 되느냐, 큰 것이 쪼개져 작은 것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은 해와 달과 오행(金木水火土)으로 설명되고, 12달은 몸의 12경맥 극혈에 비유된다. 이렇듯 인간의 몸은 우주의 현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논리를 더 발전시키면 하루의 삶이 일생의 프랙털이다. 하루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일년이 만들어지고 일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하나가 그렇게 독립된 우주이지만 자유로울 수는 없다. 프랙털의 어원이 이해에 도움을 준다. fractal의 어원은 라틴어 형용사 fractus이다. 이에 상응하는 라틴어 동사 frangere는 to break라는 뜻을 지닌다. 규칙 없는 조각들(irregular fragments)을 생기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쓸모가 큰 프랙털들은 우연(chance)과 관련이 있으며, 그런 규칙성과 불규칙성은 모두 다 통계적(statistical)이라는 점에서 집합을 이룬다.

이 정도면 대표적인 사례가 인간 사회라는데 공감이 갈 것이다. 인간은 규칙 없는 자유로운 존재지만 몸의 기운이 경맥과 낙맥의 순환 소통에 좌우되듯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씨줄과 날줄 구조 속에 숙명과 같은 자기 위치와 주어진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 위치를 지키고 역할에 충실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본분을 다하는 것이 바른 삶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 존귀한 존재라는 존재이니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잠시 손을 놓고 생각해보자.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라면 하찮아지지 않는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라면 만물의 영장일 수 없고,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有人)이 최귀(最貴)하니… 와 같은 문장이 어린이를 가르치는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담길 수 있겠는가.)  즉, 골프에서 강조하는 매너와 에티켓이다. 

골프하는 바른 자세 역시 자기 공 열심히 치면서 동반자 존중하고 팀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쉽고 간단하다. 동반자에게 폐가 안 되도록 하면서 자기 공만 열심히 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골퍼는 그리 많지 않다. 말로 하기는 쉽고 간단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공 외공을 함께 쌓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세 명 혹은 네 명이 라운드 하는 팀에서라도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적어도 동반자보다는 낫게, 자기 공부터 정복해야만 한다. 자기 공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남의 공이나 스윙을 간섭하거나 동반자들 분위기 맞춘다고 설레발 떨며 나서는 것처럼 주제 넘는 꼴불견은 없다. 물론 기본은 동반자에게 폐를 주지 않을 만큼의 기량은 각자가 스스로 갖춰야 한다.

그런 뒤 모여서 함께 하는 라운드에서의 주인공은 각각이 다 ‘나’인 것이기에 동반자를 간섭하기 보다는 자기 공부터 열심히 치고, 그리고 여유가 생길 때 리더의 역할을 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천부경을 새겨 내공을 갖춘 자신감이요, 기량을 넘어선 부드러움으로 클럽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도록 하는 장타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프랙털(fractal)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설명하고자 한다. 프랙털은 근래 들어 각광받고 있는 이론으로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小數) 차원을 특징으로 갖는 형상을 일컫는다.
(프랙털이란 이름은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만델브로에 의해 지어졌으나, 이러한 형상들에 관한 추상적 논의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칸토어집합, 코흐눈송이, 시어핀스키삼각형 등이 그 예이다.)

처음에는 기하학 구조를 뜻하는 수학용어였지만, 그러나 점차 의학 금융 문화 체육 예술 컴퓨터그래픽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사용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창조의 규칙이 되었다.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하에서는 가지의 어느 부분을 선택해 확대해도 전체 나무 모양과 같은 모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주가 움직임을 표시하는 그래프 역시 프랙털이다.)

인체에서도 프랙털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수지침의 원리도 인체의 건강 상태가 양 손에 나타난다는 프랙털 논리이고, 발바닥에도 같은 현상이 있다하여 족침(足針), 귀에도 있다하여 이침(耳針), 혀에는 설침(舌針) 등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고, 얼굴에도 전신의 건강상태가 나타나고, 머리는 머리대로, 또 침을 사용할 수 없어 진단용으로 알려진 홍채의 현상도 프랙털로 이해할 수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허파에서 동맥이 갈라져서 실핏줄을 이루는 구조나 우리 몸속의 기관지, 뉴런, 심장 구조가 다 마찬가지 프랙털의 반복이다.  

자연은 말할 것도 없다. 고사리, 공작의 깃털무늬, 구름과 산, 해안선의 형태, 은하 구조 등 자연과 우주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물들이 프랙털의 예에 속한다.

프랙털이 만들어내는 형상은 실로 환상적이다. 흔히 자연에는 규칙적인 것보다는 불규칙적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불규칙해 보이는 운동도 잘 정의된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고 그 안에서의 엄연한 질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의 반복이 단순한 확대나 축소가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은하계부터 미세 원자세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자연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속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골프에서 부닥치는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백양백색인 것 같지만 프랙털을 이해하면 같은 패턴의 크고 작은 반복임을 알 수가 있다. 골프 선생들은 때와 장소와 환경이 다른 만큼 전략도 샷도 그때그때 다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인 속성은 같은 동작의 반복인 것이다. 이는 장타를 위한 연습이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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