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ㆍ자산전문가에서 물류센터 전문가로

물류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 중에는 물류와 관계없는 분야에서 역량을 쌓다가 우연한 기회에 업계로 들어와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지알이씨오(대표 박남규)의 박형연 전무는 건축의 길에 들어섰다가 물류업계에 발을 딛게 된 케이스다.

건축물 관련 프로젝트 맡았던 인재

박형연 전무는 한국에서 건축과를 다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설계보다는 건축 과정과 건설사에 대한 이해, 매니지먼트 같은 것에 더 큰 흥미를 느꼈는데,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공부 욕심이 났다. 그래서 미국으로 향했고, 켄자스주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여세를 몰아 박사과정까지 끝내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박사과정을 앞두고 귀국해 군복을 입었다. 남자의 필수 의무인 군복무를 위해서였다.

“제대 후에 미국행 대신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S건설사에서 미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 주택단지, 복합문화센터, 택지를 개발하는 일이었는데, 시장의 흐름을 읽는 법과 사업을 전체적으로 보는 법, 수익성 분석을 하는 법 등 많은 것을 익히고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건축을 전공한데다 영어도 능통한 박형연 전무는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비롯해 여러 건축물 관련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서울파이낸스센터(SFC)를 꼽는다. “SFC의 프로젝트․프로퍼티 매니저를 겸직하고, 프로젝트를 끝낸 뒤에는 자산관리업무를 담당했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으로 들어오는 큰 프로젝트였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쾌적한 근무환경, 철저한 보안은 물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심어주고 자산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지금도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SFC를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같이 일했던 많은 분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면서.

캐나다서 밑바닥부터 시작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박형연 전무는 다시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루고 있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렴한 학비를 위해 영주권을 알아봤다. 그런데 9․11테러 이후 영주권을 받는 것이 너무 어려워졌다. 그래서 캐나다로 날아갔다. 미국생활 경험이 있어 캐나다도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막상 건너가보니 난관에 봉착했다. 캐나다 회사에서는 한국에서의 경험과 미국에서 받은 학위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가져간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번은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했는데, 일당이 너무 적어 며칠씩 모아서 지급했다. 점심 시간이 되자 담당자는 수고했다며 급여와 햄버거를 건냈다. 트럭 조수석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혼자 캐나다에서 발버둥치는 생활이 너무 서러웠다. “한국에서 잘 나갔다가 낯선 땅에서 혼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프라이드 같은 것을 깨뜨리면서 겸손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힘들었던 생활은 부동산 자격증(realtor)을 취득하면서 나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인중개사랑 비슷한 개념이지만 하는 일은 더 전문적이다. 매출이나 사업성 분석, 세무,법무관계 등 회계, 세무, 법률적인 영역까지 챙겨야 한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는 캐나다 최대 부동산기업인 서튼그룹(Sutton Group) 소속으로 일을 했다. 토론토 나이아가라 폴 지역의 쇼핑몰 사업체 매각 딜을 진행하는 등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발로 뛰며 물류를 익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국을 찾았던 박형연 전무는 6년간의 캐나다생활을 정리했다. 평소 그를 눈여겨봤던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관리와 투자자문일을 맡으면서 기업형 오피스빌딩 딜을 수행함과 동시에 회사의 가장 큰 사업인 화성동탄물류단지 조성사업 개발에 관여하고 마케팅을 맡았다. “당시 국내는 오피스텔 투자 시장이 성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물류센터와 같은 곳에 투자금이 몰리기 시작할 때였다. 이전부터 물류센터 시장의 흐름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업무를 맡아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박 전무는 물류를 익히기 위해 발로 뛰었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류센터를 찾아다니면서 고객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작업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센터에서 하루 종일 차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대별로 드나드는 차량의 톤수부터 피크시간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차량까지 세세하게 체크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현장 직원과 운전기사들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물류단지를 수출모델로 만들고 파

박형연 전무는 동탄물류단지를 국내 최고의 물류단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업계 선배들의 목소리나 현장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입주사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그는 “욕심이 있다면 물류단지를 해외에서도 견학을 오고, 수출도 할 수 있는 사업모델로 만드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며 “국내외에서 경험한 것을 물류에 접목해 최상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박 전무는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많은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그는 20여 년 전부터 해온 요가를 꼽는다. 또한 풍수지리에도 관심이 많아 수맥을 파악하는 능력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박형연 전무는 늦은 시간까지 힘들게 일하는 물류업계 종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밤늦은 시간에도 자신의 임무를 위해 땀 흘리는 택배기사님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물류업계에 들어오면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분들을 만났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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