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이 우리 물류산업의 미래다 -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

필자가 ‘물류의 길’을 걸어온 지도 30여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물류산업은 많은 발전을 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간혹 필자에게 우리 물류산업의 발전이 더딘 이유와 어떻게 하면 더 발전을 할 수 있을지를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가 늘 ‘물류는 시스템’이며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한다.

물류는 ‘시스템’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아직도 물류를 수송(운송), 보관, 하역, 포장 등과 같이 기능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물류업체도 운송업체, 하역업체, 창고업체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물류를 기능별로 분류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물류는 운송만으로, 포장만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문부문 쪼개서 들여다보면 보기는 쉬울지 모르나 물류 전체를 보지 못해 변화를 모색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물류는 시스템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답을 내지 못한다. 물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과거 15년 전과 비교해 물류산업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하게 변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류를 하나의 단품 개념이 아니라 복합체 즉 ‘시스템’으로 봐야하는데 그런 인식의 변화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운 배경에는 물류산업이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드오프란 ‘두 개의 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물류의 각 기능들은 서로 간에 반대쪽으로 가려는 트레이드오프 경향이 많다.

예를 들면 제조·유통기업은 마켓이 전국에 산재되어있다 보니 물류센터를 전국 곳곳에 많이 짓는다. 그러면 물류센터 투자비가 많이 들고, 재고(보관) 비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장거리 운송은 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송비는 내려간다. 만약 이 업체가 물류센터를 축소하면 보관비는 줄지만 반대로 운송비는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보관비와 운송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트레이드오프라고 한다.

이런 트레이드오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류를 부분적 기능이 아닌 시스템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창조적인 사고’ 즉 창의력이다.

물류는 ‘창의력’이다

한 창고업자가 찾아와 창고를 크게 지어놓았는데 물량이 없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짝짓기를 잘하라는 조언을 했다. 1년 내내 보관할 수 있는 화물을 가진 화주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름철이 성수기인 A업체는 겨울철에는 비수기가 된다. 반대로 겨울철이 성수기인 B업체는 여름철에는 비수기가 된다. 여름철엔 A업체에게 10~20%의 이익을 붙여서 창고를 빌려주고 반대로 겨울철에는 B업체에게 역시 10~20%의 이익을 붙여서 창고를 빌려주면 1년 내내 창고를 돌려서 20~40%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A와 B 회사를 같이 결합하는 게 바로 공동화 물류시스템이다.

언뜻 쉬운 얘기 같지만 이런 발상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경우를 찾기란 의외로 쉽지가 않다. 창의력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3PL이 등장한 배경에도 창의력이었다. 미국에서는 운송업자와 함께 물류시장에서 한 축을 차지할 만큼 포워더가 발달해 있다. 미국의 화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년 10%씩 운임을 깎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운송업자도, 포워더도 힘든 상황이 됐다.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 끝에 나온 것이 포워더도 운송업자도 아닌 3PL이라는 개념이다. “우리에게 물류를 맡겨만 주면 물류비를 확 줄여 주겠다. 대신 10~20년 장기간 계약을 해달라”는 제안서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화주의 물류를 혁신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제안(창의력)을 하면서 3PL이 등장한 것이다.

물류시장을 들여다보면 창의력을 활용한 재미있는 비즈니스가 많다. 필자가 최근에 새로 개발한 ‘주물·단조 업계용 Mesh Container Pool System’은 가장 창의력이 발휘된 비즈니스라고 감히 자부한다. 단조업계는 자동차, 선박, 발전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물업계 역시도 중장비, 농기계 같은 전방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업체들은 그동안 1회용 목재 용기를 사용해 왔다. 목재 패킹은 외주업체까지 운송되면 거의 폐기되기 일쑤였고 철재 용기는 다시 회수되어야 재사용이 가능한데 당시의 주물·단조업계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었다. 1회용 용기의 사용으로 초기 구매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잦은 분실로 인해 관리비용도 증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파렛트·컨테이너 풀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와 농산물 리터너블 패키지 개발 경험을 합쳐 단조·주물업계의 공정용 물류기기를 표준화한 Mesh Container Pool System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것을 공동 사용하는 방식의 풀 시스템으로 제안해 실현하여 성공을 거뒀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과 물류를 시스템으로 보는 안목,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창의력과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안 능력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물류는 협력(collaboration)이 중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로지스올의 브랜드 의미에 대해 가끔 ‘물류의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얼라이언스’에 악센트가 있다. 물류의 생명은 협력(공동화)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왜 우리 물류산업은 좀 더 발전하지 못할까 많은 고민을 해보지만 결론은 물류업계의 노력만으로는 물류산업이 선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주업체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물류업체와 화주기업은 흔히 말하는 갑과 을,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물류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면 ‘함께 하지 않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주변과 함께 가야만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파렛트 풀, 컨테이너 풀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면서 깊이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풀 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은 파렛트와 컨테이너를 단순한 용기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보고 유니트 로드 시스템을 적용한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비즈니스 모델은 ‘공동물류’를 추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로지스올의 경영정신을 ‘공존공영’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필자가 있는 로지스올 회사 광고에 공동생활을 하는 개미집단과 벌들, 물소떼 등을 등장시키며 공동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그 광고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플라이 체인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결국 물류가 발전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류의 길’

우리 물류산업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 물류는 컨버전스(융합) 사업이며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필자의 물류 스승이신 일본의 물류 개척자 히라하라 스나오(平原 直) 선생의 영향이 크다.

80년대, 물류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온 젊은 필자에게 히라하라 선생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유를 아는가? 군수물자를 나를 때 미국은 포크리프트를 사용했지만 일본은 바보처럼 등짐으로 포탄을 날랐기 때문이다.” 히라하라 선생은 2차 대전의 경험을 통해 일본에서 물류를 일으키자는 생각을 하였고 그 시작을 하역 기계화에서 찾았다. 조선인 징용자를 지켜보았던 히라하라 선생은 물류를 선진화시켜 보겠다고 한국에서 찾아온 젊은 필자를 울면서 가르쳤고 필자 역시 울면서 배웠다. “사람은 머리로 일해야지 소나 말처럼 근육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 히라하라 선생의 이 한마디는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가르침이다.

인간이 소나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큰 공장이 세워지고 물동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양 뿐만 아니라 무거운 물건도 많아지는 것인데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를 처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유니트 로드 시스템이다.

과거 위정자의 제일 큰 덕목 가운데 하나는 치수(治水)였다. 그런데 물을 다스리자면 상류와 하류를 다해야지 어느 한 부분만 할 수는 없다. 오늘날도 댐과 다리, 강둑 등 전부를 관리해야 제대로 된 치수라고 할 수 있을 것과 같은 이치다.

물류 관리도 이와 똑같다. 전체 흐름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문제는 물류를 기능별로 분류하다 보니 자기 영역의 것만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포장을 하는 사람은 물건에 맞춰서 포장하는 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전 공정과 다음의 흐름까지 관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기 영역의 부분만 들여다보는 사람과 물류 전체의 흐름 관리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은 생각이 틀릴 수 밖에 없다.

물류의 전체를 들여다보고 관리하려면 유니트 로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파렛트를 두 줄로 트럭에 실으면 트럭 적재함의 규격이 되고, 그걸 다시 두 줄로 컨테이너에 실으면 해상 컨테이너 규격이 된다. 창고에 넣으면 그대로 랙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니트 로드 시스템의 이치이다.

지금은 IT시대, 스마트해야 이길 수 있다

요즘은 어딜 가도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유행한다. 싸이의 노래가 유명해진 것은 유튜브를 통해서다. 싸이의 경우처럼 지금은 IT 덕분에 물류인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가 물류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80년대 소팅기 등 자동화 설비에 매료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바로 컴퓨터와 IT의 등장 때문이다.

90년대 컴퓨터와 정보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할 때까지도 물건과 정보가 연결이 잘 안 됐다. 하지만 지금은 RFID와 IT의 발달로 물건과 정보가 링크되는 세상이 됐다. 다시 말해 과거와 다른 물류 관리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 전자업체의 CEO가 서울의 자기 책상에 앉아 미국에서 팔리는 자사의 스마트 TV가 내일 재고는 어떤지, 과잉 재고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에서 움직이는 물류의 위치추적은 물론 상태까지 리얼타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시대가 된 것이다.

유통업체 중에 대형 물류센터를 자주 짓는 기업이 있다. 물론 뭔가 경쟁력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무조건 크게 짓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 보다는 좀 더 ‘스마트’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

일본의 경우 80년대에 창고 자동화 설비를 대대적으로 도입했으나 90년대 들어 대부분 이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투자 대비 성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는 안 해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많이 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SCM 경쟁력이 기업 생존을 좌우한다

오늘날의 기업 경쟁은 SCM 전쟁으로 불린다. 제품의 품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SCM이 안 되는 회사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예를 들면 A전자와 B전자의 치열한 경쟁은 단순히 제품 경쟁이 아니라 A전자와 그 관계사들, B전자와 그 관계사 간의 SCM 경쟁이다. 어느 쪽의 SCM이 더 강한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과거 자동차 부품용 원자재의 패킹에 1회용 포장재를 사용했으나 반복 사용이 가능한 리터너블 패키지로 교체하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업계가 최근 고전하고 있지만 린 방식, JIT 등 여전히 SCM에서는 강한 면이 있는 만큼 우리 자동차업계는 계속 긴장해야 할 것이다.

물자의 흐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물류의 흐름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처음부터 어떤 물건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봐야 한다. 과자를 생산하는 식품회사라면 밀밭까지, 설탕은 사탕수수밭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최종 소비자까지 고려한 리버스 로지스틱스까지 염두에 둬야 답이 나온다. 이것이 SCM이다. SCM의 어려움은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관련 모든 기업이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15년 전과 비교해 보면 물류에 흥미를 느끼고 일하는 물류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생활 깊숙이 물류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물류산업이 내·외형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물류산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니트 로드 시스템과 물류모듈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축할 것인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날의 물류산업은 고도의 하이테크 산업이 됐다. 그만큼 물류인들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물류인들의 실력이 우리 물류산업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물류 관리자는 정명훈 씨 같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휘자는 자신이 직접 연주를 하지 않지만 각 분야별로 최고의 연주자들을 뽑아 어느 순서에 바이올린이 등장할지, 어디에서 첼로가 등장할 지를 결정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물류를 잘하려면 바로 이런 코디네이터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우리 물류산업이 선진화 되려면 아주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가진 창의력만큼 물류가 선진화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가 평생 5천여 권의 물류 전문서적을 수집하고 물류도서관을 만든 것도 창의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서 많은 물류 컨설팅 사례를 섭렵할 수 있었다. 당시 물류컨설팅을 하던 필자의 고민은 ‘공장의 물자 흐름을 어떻게 시스템화 할 것인가?’였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고 현장 물류인들을 만나 물류현상을 알아냈다. 물류는 결국 현장에 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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