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세상의 가치가 또 하나의 가치를 만든다

추석연휴 계획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거래처 담당자들과 통화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인사가 있다. “추석연휴 때 어떻게 보내느냐?”라고… 금번 추석연휴가 3일밖에 되지 않은데도 다들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C그룹 임원은 29일 아침 일찍 정읍에 있는 친가에 가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다녀와서, 곧장 광주에 있는 처가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10월 1일 서울로 돌아온다고 했다.

D회사의 부장은 부모님이 오래전 돌아가셔서 29일은 가벼운 운동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30일 아침 집에서 추도 예배를 드린 후 여주에 있는 선산에 들러 성묘를 마치고, 인천에 사는 처가로 간다고 했다. 처가에는 꼭 가야한다면서 그 이유로 매년 추석 때 모임이 있다고 했다. 고향 여주 형님에게는 성묘 때 잠깐 들르고 처가에서 1박2일 편하게 쉴 계획이라고 했다.

H그룹의 대리 역시 짧은 3일의 연휴 동안 빽빽한 스케줄이 있다며 연휴계획을 말해주었다. 미혼이지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어 29일 함께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추석 당일인 30일에는 잠실의 여자친구의 집으로 인사가기로 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성대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자랑까지 했다.

새로운 민족의 대이동 행렬

위 3명의 추석명절 계획을 자세히 들어다보니, 추석 전날은 휴식을 취하거나 부모님을 만나며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기 위해 친가로 향하고 있으며, 추석 당일에는 성묘를 마치고 처가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현듯, 명절의 대이동이 서울 중심의 귀성과 귀경에서 발생하는 대이동이 아닌, 명절 전날의 친가로의 차량 행렬과, 명절 당일의 처가로의 행렬로의 그림이 그려졌다. 지난 설 명절을 더듬어보더라도, 명절 당일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할 때 대부분이 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통화 내용의 기억이 명절 전 친가로, 명절 당일 처가로의 행렬을 잘 설명해주고 있음이 확실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는 행렬이 아닐 수 없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의 명절은 가장 위주의 모임만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명절이되면 친가 위주로 모여서 서로 교제를 했으므로 처가 쪽은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처가는 명절이 한참 지난 후에야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잠깐 다녀올 정도였다.

나는 친가 위주의 명절이 발전해서 친가와 처가에 동등하게 적용되는 요즘 명절 풍습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대가족이 아닌 소가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의 명절은 대가족 시대의 명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번 연휴도 29일에는 친가로 달리는 차량의 행렬들이, 30일에는 처가로 달리는 차량의 행렬들이 민족 대이동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명절의 불편한 진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님과 함께 살았으므로 명절이 돌아오면 전날부터 큰아버님, 작은아버님 식구 30여명이 우리 집을 찾아 무척 행복했다. 지금까지 사촌들과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도 1년에 2~3번의 명절 때마다 사촌들과 만나서 많은 애기를 나누고 같이 뒹굴고 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지금의 명절풍습이었다면 사촌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멀어졌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 때 아쉬운 점이 있다.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대가족 시대의 명절은 딸이 친정에 아예 발도 붙이지 못했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소가족 시대의 명절마저도 분가한 아들과 출가한 딸이 함께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친가에서 명절날 오후 처가로 떠나는데, 그 때 딸은 시댁에서 친정으로 오고 있으니, 둘이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들과 딸을 번갈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 입장에서는 양가를 다 찾아야 하는 더 분주한 명절이지만, 명절날 아들이 다 처가로 간다고 우리 부모님들이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딸과 사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명절날 처가행 때문에 교통 혼잡?

금번 추석명절 30일 오후 대부분의 도로에는 처가로 향하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안부전화를 했던 친구들의 추석계획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친가 위주의 귀성, 귀경으로 인한 교통대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명절풍습을 방송했던 방송국들도 달라질 듯하다. 명절 당일 처가행 교통혼잡에 대한 방송이 추가되지 않을까?

나는 남매(솔, 구)를 두었는데, 앞으로 두 자녀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 때 맞이하는 명절을 생각해보았다. 명절 전날은 아들 가족과 명절 당일 날 저녁은 딸 가족과 함께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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