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

인간의 사랑에 세 단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나 골프 사랑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이끌림, 둘째는 빠져듦, 셋째는 애착이라고 했다.

골프에 호감을 느끼는 첫 단계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된다고 했는데, 분비가 과다하면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의 원인이 되고 반대로 적으면 애착 결여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심하면 파킨슨병을 앓을 위험이 높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도파민은 (고통은 빼버리고) 행복감만을 전달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소위 “당근을 얻기 위해 채찍을 마다 않는” 식으로 도박 골프가 심한 사이코패스(Psychopathy) 역시 도파민 분비가 과다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인격 장애현상이다.

다음 단계로 골프에 빠졌을 때는 또 다른 신경 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 만들어진다고했다. 미각, 촉각, 후각을 자극하며 비만으로 유혹하는 초콜릿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외 약 300여 종류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그 중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핵심 물질이 페닐에틸아민(C8H11N)이다. 단백질 8%, 탄수화물 60%, 지방 30%의 이상적인 식품에 들어있는 페닐에틸아민의 양은 0.5~1%에 불과하지만 기분을 좋게 함은 물론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작용한다. 라운드 중 피로가 몰려올 때 초콜릿 먹는 것으로 감정이 토닥거려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몸에 페닐에틸아민을 주사하면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상승한다.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며, 뇌에서 도파민을 방출하는 방아쇠 역할도 하여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물질 역시 농도가 과다하면 과민반응 보이고 심한 경우 정신분열증세로 간다.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 편두통이 나는 경우 또한 과량의 페닐에틸아민 작용으로 뇌의 혈관을 조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류상으로 페닐에틸아민은 마약의 주성분인 암페타민(amphetamine, C9H13N)에 속한다. 이 성분 때문에 흥분하고 부분적으로 감각 인지가 변화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피로감퇴와 주의력집중을 위해 약물로 사용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마약으로 분류되어 의사의 처방 없이는 살 수 없는 물질이 되었다.

세 번째는 애착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겸손해지고 치열함에서 한 발 물러서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도파민 → 페닐에틸아민 → 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호르몬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다. 이 물질들은 여운을 즐기며 애착심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남녀의 불같은 사랑의 시기가 ― 혹은 행위가 ― 지난 후 다소 마음이 진정되는 가운데서 활발하게 분비되는 호르몬들이다.

결과가 어떻든 게임이 끝났을 때 편안함을 느끼게 하며 과정을 돌아보게 하고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도 할 수 있고, 드러내어 대화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에 이끌렸던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깨어나 속칭 「제 눈에 콩깍지」를 거두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보낸 시간’에 애착을 갖는 것이다. 골프에서 실핏줄 터지는 것 같은 긴장과 흥분의 라운드를 마치고 일명 열아홉 번째 홀에서 마주앉아 즐거운 순간만 회상하며 깔깔거리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인 것이다.

장황하게 쓰고 있는 「사랑의 감정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기에 등장한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역시 적정량이 합성될 때 진정한 애착이 생기며 이야기(story)를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감동이 넘치도록 무르익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 적정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만족’이라는 감정임을 알아야 한다. 만족은 기대라든가 욕심과 반비례한다. 도파민이 욕심을 품게 하고 페닐에틸아민이 기대를 키운다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나는 나다’ 식의 ‘체념의 미학’을 체득해야만 만족감에 좌우되는 「가장 인간적인」애착 단계의 참 멋을 맛볼 수 있다.

체념에서 체(諦)란 ‘자세히 살펴 안다’는 뜻으로 욕심을 거두고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체념은 삶의 조건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항복’과 ‘약간의 슬픔’과 ‘많은 깨달음’을 동반하는 마음가짐이다. 골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마음가짐이 아닐수 없다.

체념은 굴복이 아니다. 아픔의 기억을 내면화 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전략적 선택이다. 따라서 체념에는 다시라는 말이 없다. 힘의 논리에 따라 포기한 삶은 언제든 다시 시도하지만 체념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거나 체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는 일에 용이함이란 있을 수 없다. 체념은 게임을 끝내고 정리하는 일에도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간에겐 만족이라는 의식이 부족하다. 골프가 안 되는 이유는 108가지(?)나 만들어 늘어놓지만 골프가 즐거운 이유는 10가지도 꼽지 못한다. 만족도가 약하면 1단계 2단계를 거쳤다 해도 3단계로 가지 못하고 사각지대에서 방황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그만 둔 것도 아니고,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대개는 부족한) 바소프레신의 양이 혼란을 준다. 바소프레신은 일명‘일부일처 화합물’이라는 별명을 지닌 애착유발화합물이다. 지구상의 포유동물 중 약 3%만이 일부일처성인데 놀랍게도 인간은 이일부일처제 군에 속하지 않는다. 그만큼 바소프레신의 양이 모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문란한 성생활의 도덕적 문제는, 화학적 연구에서 보면 본능의 문제일 수 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골프에 임할 필요가 있다. 골프를 잘한다는 건 필드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음미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골프에서 최고의 기쁨은 동반자끼리 눈길과 숨결과 온기를 나누는 데 있다. 어느 골프장에서나 그런 자세로 라운드하면 심미적 정신적 만족을 느껴 즐거울 수있고 애착을 키워갈 수 있다. 이렇게 세 단계를 무난히 넘어서면 그 다음은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주는 엔도르핀이 지켜준다. 골프의 기쁨이 몸과 마음에 충만해지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소설가/골프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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