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세종대와의 경영학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인기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미스터리 기법을 동원해 풀어내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한석규가 연기하는 세종대왕의 캐릭터는 이제껏 알고 보아왔던 ‘세종대왕’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툭하면 ‘지랄’, ‘제기랄’ 등의 속어를 쓰는 임금을 우리는 보지 못했다. 드라마적인 재미이기도 하지만 한 꺼풀 까고 보면 백성들의 진짜 소리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통의 출발인 셈이다.
또 극중에는 어떤 정책을 놓고 신하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경연(군주에게 유교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치던 교육제도)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때 세종은 일방적으로 법 실행을 명령하는 게 아니라 반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결론을 이끌어 낸다. 리더십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아니 우리 역사에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훈민정음 창제는 비전경영이다?

세종이 꿈꾸었던 국가 경영비전은 ‘나라 안팎으로 평안하고 나라의 창고가 넉넉하며 작지만 부강한 나라로의 도약’이었다. 이러한 핵심적인 정치이념을 세종은 즉위교서에서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세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바로 훈민정음 창제이다. 세종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면 백성들이 주인이 되어 말하고 싶은 것과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백성들에게 문자를 주어 사회계층간의 단절을 막으려 했다. 문자라는 권력을 백성에게 주어 백성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취득이 곧 부와 권력을 결정하는 지금의 지식정보사회 개념을 세종은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언어를 통일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의식을 함양시키고 한글이라는 문자사용을 통해 문화적 상상력을 높여 창조적 문명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비전은 리더가 제시하는 것이지만 비전 달성은 혼자서 할 수 없다. 구성원의 참여, 열정, 헌신으로만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종은 가까이는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멀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감읍시키는 정치를 했다. 재상 허적은 임종 시에 “우리 임금은 간언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셨다”라고 말한 것이 그 증거이다.
세종시대에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조선의 백성들이다. 특히 세종은 약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책을 많이 시행했다. 노인 중 장수한 자는 천인을 면해 주거나 봉작을 주는 등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공경했다. 병자, 고아, 심지어는 죄수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환경을 개선하려고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남녀 분별로 치료받지 못하는 처자를 위해 여의사를 선발해서 교육시키기도 했다. 노비들에게 출산 휴가를 100일, 심지어 남편 노비에게도 한 달간의 산후 휴가를 준 것은 지금 보기에도 시대를 앞선 제도이다.

인재경영, 세종만큼 할 수 있을까?

人事가 萬事라는 말은 고금을 통해 언제나 진리이다. 세종대왕은 ‘인재는 천하의 지극한 보배이다’라는 말을 과거시험 문제로 낼 정도로 사람경영을 중시했다. 그리고 어느 시대보다도 탁월한 많은 인재를 곁에 두고 국가를 경영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간택-평론-중의’라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관직에 사람을 임용할 때 이조의 낭관(郎官)으로 하여금 매우 정밀하게 간택(揀擇)하게 했다. 인사담당 사무관에게 해당 후보자의 경력과 자질, 부패혐의, 가족관계까지 꼼꼼히 살펴보게 한 것이다. 다음은 이조 내부의 관원들이 모여 그 후보자가 적합한지, 더 나은 적임자는 없는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하는 평론(評論) 단계를 거쳐, 마지막은 조정 안팎의 여론을 듣는 중의(衆議)를 통해 임명을 하였다.
세종의 인사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능력주의’이다. 인재를 분류하여 적합한 자리에 앉히고 잠재력을 보면서 적당한 일을 시켜 능력을 기르고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해 능력 발휘를 극대화하도록 했다. 능력만 있으면 문벌과 신분 고하를 초월해서 등용시켰는데 서얼 출신의 황희 정승, 천민 출신의 장영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세종의 인재쓰기에 있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부패관리의 후손이나 과거에 흠과 허물 많던 사람에게도 능력 발휘의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조말생의 경우 지금으로 따지면 고급 승용차 24대 값의 뇌물을 받은 적이 있지만 다시 복권시켰다. 여러 차례의 뇌물수수혐의와 간통사건 등으로 탄핵을 받은 황희는 정승으로 등용시켰다. 세종은 이들로 하여금 깊은 반성과 함께 나라를 위해 탁월한 공을 세울 기회를 준 것이다.
세종 시대는 인재가 매우 풍부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시대만 특별히 인물이 많았던 것이 아니다. 인재를 잘 구별하고 장점만을 보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인재 풀이 넘친 것이다. 우리는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쉽게 하곤 하는데 사람의 어떤 점을 보고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재 풀은 충분할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세종은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세종처럼(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저자 박현모, 출판 미다스북스

 

요즘 기업의 화두 중 하나인 ‘창의적 소통’의 롤 모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을 보면 창의적 소통의 길이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세종이 천재는 아니었지만 집단 지성을 이끌어내는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 탁월한 인물이었다고 지적한다. 장영실 같은 인재를 활용하는 능력도 탁월했지만, 주위 사람들을 활용해 창조적인 생각을 얻어내는 역량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세종은 개인이 아닌 다수의 생각을 얻어내는 것이 바로 창조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든 기관이 바로 집현전이다. 이곳에서 그는 다양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얻어낸 결론이 견(?), 광(狂), 지(止) 세 가지였다고 한다.
견(?)은 ‘하지 말자’, ‘그만 두자’라는 신중함을 나타내는 말이고, 광(狂)은 ‘해 보자’, ‘위험은 있어도 나아가 보자’라는 진취적인 뜻을 담고 있다. 세종은 임금과 신하, 신하와 신하가 소통하고 논쟁하는 통로로 경연(군주에게 유교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치던 교육제도)이라는 것을 활용했다. 이때 찬성과 반대가 격렬히 부딪치며 조합하는 과정 속에서 창의성이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찬반이 팽팽히 대립할 때 잠시 멈추게 하고 생각하는 지(止)를 활용했다. 창의적 결정을 위한 생각 정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세종을 도운 사람이 바로 황희 정승이다. 찬반을 모두 듣고 이들을 통합하는 정리를 기막히게 잘한 인물이 황희였다.
LG경제연구원은 현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리더들에게 이러한 세종대왕의 창조적 소통 방식을 깊이 음미하고 조직 운영 방식으로 응용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출처 : LG경제연구원, ‘LGERI 리포트-소통(疏通)에 능한 기업’(2010. 3. 10)

 

7가지 키워드로 본 세종대왕의 리더십
知  / 命 / 創 / 通 / 進 / 實 / 修

지(知) _ 지적 리더십
세종은 스스로 엄청난 분량의 공부를 했으며, 집현전을 통해 통합적 지식을 축적해 냈다. 그리고 경연이라는 독특한 공동학습 프로그램과 정례회의를 통해 지식을 확장했다. 축적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는 지식, 확장되지 않는 지식은 단편으로 끝나고 자신만의 만족에 그치게 된다.

명(命) _ 소명 리더십
세종은 ‘왕이 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임무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인물이다. 그리고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선언을 한다. 이는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 백성을 사랑한다는 애민과는 다른 것이다. 즉,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본’으로의 ‘중심이동’ 선언인 셈이다. 그 선언에 따라 자신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위임 받은 자’라는 소명의식이 비전 실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창(創) _ 창의 리더십
대표적인 것이 훈민정음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발명품, 실용적 기구들, 실용서적들이 세종에 의해 만들어 졌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모두 창의경영의 성과들이다. 이 창의경영의 출발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어진 마음’에서 출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절박한 필요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진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어질지 못하거나 감수성이 없는 마음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통(通) _ 소통 리더십
세종은 왕이 되기 전에 부왕 태종으로부터 ‘일의 대체를 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채택해서 힘을 실어주었다. 지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독선이 없었다. 특히 세종의 경청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진(進) _ 실천 리더십
보통 추진력이란 언어가 주는 이미지는 각종 장애물과 소소한 민폐는 돌아보지 않고 돌파해 내는 저돌성을 나타내 보이지만 세종은 느리더라도 끝내 해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추진력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하들의 반대를 극복해내는 설득과 타협, 소통을 통해 결국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참여하게 만드는 포용적인 실천력을 갖추었다. 세종대에 이루어진 성과들이 어느 하나 단기간에 쉬이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도 그 많은 것들을 이룬 배경에는 이러한 설득력과 실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

실(實) _ 실용 리더십
세종은 어떤 사안을 시작하거나 그 결과를 보고받을 때면 “이것이 백성에게 유용한가”를 물었다고 한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며 실용적 법제정과 실행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용은 인재쓰기에서도 드러난다. 뇌물을 받거나 도덕적인 지탄을 받는 사람들도 그의 재능을 먼저 활용하기 위하여 임금이 방패막이가 되어 용서하고 등용했다. ‘법은 융통성과 원칙 중에서 어떤 한 가지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원칙론이 빠지기 쉬운 억울함을 실용의 차원에서 보완하였던 것이다.

수(修) 수신 리더십
세종만큼 자기 절제와 인내가 몸에 밴 사람도 드물다. 그는 평생 학습, 평생 수양을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실용을 위한 학습보다 먼저 긴요한 것이 바로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asasejong/100123082857

 

제1계명,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국왕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굶어 죽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제2계명, 왕을 추대한 백성에게 헌신하라. 신뢰를 주는 법과 제도, 어짊으로 정치를 세운다는 것을 국정의 핵심이념으로 삼았다.
제3계명, 인재를 기르고 선발하고 맡겨라. “내가 작은 벼슬을 제수할 적에도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고르는데 하물며 정승이리오?”라는 말 속에 인재제일의 경영을 볼 수 있다.
제4계명, 싱크탱크를 활용하고 회의를 잘 하라. 세종의 즉위 첫마디는 ‘의논하자’였다.
제5계명, 억울한 재판을 없게 하라. 고문을 금지하고 증언에 의해 죄의 경중을 결정하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법률관을 가지고 있었다.
제6계명, 외교로 전쟁을 막고 문명국가를 건설하라. 세종은 명나라와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문명을 이루는데 국력을 집중했다.
제7계명, 영토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 북방영토경영을 통해 4군 6진을 개척하고 백두산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었다.
제8계명,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온 힘을 기울여 실천하라. 세종은 자연의 災異(재이)나 祥瑞(상서)를 믿기 보다는 사람이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제9계명,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 특히 술을 ‘적당히’ 마신 세종은 마음과 의지를 손상시키는 일을 조심했다.
제10계명,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라.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책을 시행했다.

출처 : 세종처럼(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저자 박현모, 출판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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