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 못한 ‘검은 백조’의 출현

칠면조 한 마리가 있었다. 푸줏간 주인이 10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먹이를 주고 정성껏 돌봐주자 칠면조는 주인이 자기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1001일이 되는 날, 주인은 칠면조의 목을 칠 칼을 들고 찾아왔다. 그때서야 칠면조는 ‘아차, 속았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칠면조는 천일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주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에서 보듯 칠면조의 경험은 잘못된 것이다. 이처럼 ‘경험법칙’을 무너뜨리는 사건의 출몰을 경영학자들은 ‘검은 백조’라고 부른다. 칠면조에게는 푸줏간 주인이 바로 검은 백조였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 인류가 본 백조는 모두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97년 네덜란드의 한 생태학자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를 발견하면서 이런 고정관념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발견은 인류에게 새로운 교훈을 제시했다. 바로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현대 경영학에서 검은 백조는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파급효과가 큰 사건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를 경제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미국 발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블랙 스완>의 저자로 유명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지난 2009년 한국에서 열린 제10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미국 발 금융위기 상황을 검은 백조에 비유해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이 1000일 동안 착각했던 칠면조처럼 굴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한 것이다.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 전개에 무기력하기만 사례는 사실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좋은 예이다. 매뉴얼 대국이라는 일본도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00년대 이후 경영 환경이 급속도로 글로벌화 되면서 기업은 충격이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위기에 자주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이를 두고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예측할 수 없었던 ‘검은 백조’가 기존의 틀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
검은 백조의 출현이 치명적인 이유는 99.9%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의 위험보다 0.1%의 확률로 발생하는 위험이 더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9.11 테러를 떠올려 보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백조에 대비하려면 이렇게 하라

기업 또는 경영자 입장에서 검은 백조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의 출현은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반기지 않는다고 검은 백조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텔레브는 검은 백조에 대비한 전략을 이렇게 제시한다.

연장자의 지혜(조언)이 비즈니스 모델보다 낫다
모델보다 경험을 믿어라. 코끼리는 모계사회이고 그래서 가장 연장 할머니 코끼리에게 많은 권위를 준다. 사실 할머니 코끼리가 특별히 몸도 안 되고 새끼도 안 낳지만 코끼리들이 이들을 봉양하면서 모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코끼리는 MS워드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글을 적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지식과 지혜는 있지만 그것이 다 연장자의 머리속에 담겨 있다.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글을 통해서 전수되지 않는 것이 코끼리 사회이다. 그러니까 Know-what이 아닌 Know-how가 연장자 코끼리에게 담겨 있는 것이다.
대공황 이후에 모든 할머니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절대 빚을 지지 말라. 무조건 월급을 아껴서 저축해라.” 하지만 경영대에 가면 여러 모델을 가르쳐주지만 사실 효과도 없는 모델을 배우고 MBA를 취득한다. 로마시대 사람들도 연장자를 존중했다. 상원의원의 어원은 연장자라는 뜻이다.

때론 부정적인 조언이 더 큰 효과를 낸다
사람들은 나한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뭘 할까요 박사님?” 이렇게 물어보면 나는 주로 뭘 하지 말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담배 끊으세요” 라고 말하면 지난 60년간 발달한 그 어떤  의료 기술보다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담배 끊는 것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동안 개발이 된 새로운 의료기기와 의료기법들 아무리 합해도 금연 하나만으로 살리게 되는 생명의 수와 맞먹을 수 없다. 간단한 것들이 오히려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익보단 위기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중요
두 명의 형제가 있다. 둘이 똑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한 사람은 보험이 없으면 파산할 수 있지만 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주당 4불을 벌었다. 또 다른 형제는 주당 2불밖에 못 벌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버틸 수 있는 능력(보험 가입)이 있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4불짜리 이익을 내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분석을 할 테지만 자연계에서는 2불밖에 못 벌지만 위기가 왔을 때 버틸 수 있는 회사가 더 좋은 회사다.
그리고 4불짜리 수익을 내는 회사가 부도가 나면 2불짜리 수익을 내는 회사가 4불짜리 수익을 내는 회사의 재고를 인수할 것이다. 모두가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덩치가 클수록 검은 백조에 취약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고 하지만 오히려 ‘블랙 스완’이 닥치면 큰 회사일수록 충격이 크다. 자연 생태계는 왜 코끼리 보다 큰 포유류를 안 만들었을까? 이것을 경제에 적용해 보면 회사가 너무 커지면 비선형적으로 블랙 스완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게 되면 회사가 덩치가 크면 클수록 더 단위당 충격이 크다. S&P 500대 기업을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큰 회사들은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작은 회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다. 작은 회사들이 수도 많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잘 버티는 능력이 있다.

이기는 것보다 안지는 게 진짜 고수
체스 선수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초보 선수들은 이기려고 하고 그랜드 마스터 선수들은 안 지려고 한다. 대신 상대방이 지게끔 한다. 그게 고수다.
초보는 이기려고 하지만 고수는 안 지려고 한다. 그러니까 실수를 피하기만 해도 된다. 실수만 하지 않아도 일류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행운을 누리게 될 수 있다. 실수만 안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불확실성을 방지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 이런 기업이 살아 남는다

‘불확실성(Uncertainty)’은 미래 세상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경영학자들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더 이상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라고 지적한다.
기업의 생존 방식과 성장 전략에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초래할 크고 작은 ‘검은 백조’가 지금보다 더 자주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검은 백조’의 출현에 기업은 어떤 대비책과 역량이 필요할까?
LG경제연구원은 ①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사전에 탐색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위기예측 활동, ②위기발생 시에도 역경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재무적 건전성과 조직 내 다양성, ③위기에 빠진 기업에게 손을 내밀어 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애정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검은 백조’를 가장 잘 다루는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역량 강화 노력을 통해 위기 후 생겨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 변화를 도약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기업일 것이다.

잡종(hybrid) 기업이 더 오래 살아 남는다
생태계에서는 유전적 특성이 서로 다른 종의 교배에 의해 생겨난 잡종(hybrid, 雜種)이 순종(純種)에 비해 갖가지 환경을 이겨내는 능력과 번식력이 더 우수한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 생태계도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유사한 생각과 가치관, 경험과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순혈주의 조직이라고 한다. 이 경우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거나 역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남다른 생각이나 행동이 나오기 보다는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해 우왕좌왕 하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 가능성이 크다.
위기대응 관점이 아니더라도 경영 환경은 지역, 인종,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다양성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받는 기업이 위기에 강하다
누군가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인생을 잘 못 살았다’고 말한다. 반대로 주변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 위기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발생한 경우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정상상태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복원능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객, 파트너, 투자자, 정부, 공동체 구성원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벤틀리대학의 라젠드라 시소디어(Raj Sisodia) 교수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Firms of Endearment)이 위기에 강하고 지속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둔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위기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복원 능력
‘검은 백조’의 출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피해가거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한 경영상의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경쟁자들보다 피해를 적게 받고 더 빨리 복원되는 능력(resilience)을 키우는 일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예측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경영상의 충격이 발생할 경우 그 충격으로부터 기업이 스스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는 재무 건전성과 투명성을 들 수 있다.
과도한 차입위주 경영, 방만한 현금흐름,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불투명한 재무회계 관행, 주주와의 소통부재 등은 위기 발생 시 기업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검은 백조’ 이후의 변화에 잘 적응해야 도약 가능
태풍은 많은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바다 생태계를 정화하고 새로운 바닷 속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업 생태계 역시 큰 위기(변화)가 지나가고 난 뒤에는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고 기업순위가 뒤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때문에 위기 후 급격히 변모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새로운 국면을 잘 포착하고 전체 판도 변화를 앞장서 주도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결국에는 검은 백조의 공격에 잘 맞서는 기업이 되는 핵심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나서 될 일이 아니다. 평소 고객과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과 혁신 역량의 확보 노력을 통해 탄탄한 기초 체력을 키워 온 기업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의 전략·위기관리 전문가인 게라드 포스터는 기업의 위기관리 전략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일정 수준의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들지 말고 평상시부터 관리하는 ‘지능화된 위험 관리(risk intelligence management)’ 기법을 도입해야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기업들이 내면에 있는 고유의 혁신역량을 발휘한다면 질병, 빈곤, 환경 등의 중대 사회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과 이윤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 자료]
블랙 스완과 함께 가라(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위대한 잠언집)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 | 배현 역 | 동녘사이언스 | 2011.6

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 | 차익종 역 | 동녘사이언스 | 2008.10

LG경제연구원, LGERI리포트 ‘검은 백조에 강한 기업’(201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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