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송시장 각종 비리와 행정 꼬집는 저승사자의 컴백

‘무소의 뿔’처럼 물류업계 각종 비리와 잘못된 정책 등을 지적하고 개선시키며 화물운송시장의 저승사자란 칭호를 받았던 이가 돌아왔다. 
그는 바로 ‘권익을 찾는 차주들의 모임(이하 권차모)’의 대표인 김현수 본부장이다.
2008년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남긴 채 홀연히 일상으로 돌아갔던 그가 혼탁한 물류시장에서 힘들어하는 지입차주들과 지입사기를 당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우려 다시 두 팔을 걷고 나섰다.
2004년 12월 10일 권차모라는 단체를 설립한 그는 5개월 후 2005년 5월 7일 부산 백스코에서 200여명의 회원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단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단체 설립 후 그는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기획수사를 도우면서 빈틈 많은 물류 행정에 가려져 있던 불법탈법 사례들을 보게 됐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입사기 및 불법운송사업 행위들과 맞서 싸워왔다.
그와 권차모의 이러한 활동은 그늘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고 있던 불법탈법 운송 사업에 대한 잘못된 법제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그는 일부 운송사업자들의 반발이 힘들었고 한다. 하지만 화물운송시장의 선진화를 이룩하겠다는 그의 사명감은 거침없었다. 2007년에는 부산의 본부사무실을 서울로 입성시켰고 그 후 더욱 많은 화제를 모았다.
특히 불법운송사업 사례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각 언론사에 제보하여 운송사업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불법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함과 동시에 전국 각 지역 수사기관에 의뢰해 불법적인 운송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등을 하게 하는 등 2007년 모 유력주간지에 화제의 인물로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유가보조금 피해자들의 삼고초려에 다시 업계 등장

왕성한 활동을 펼쳐가던 김현수 본부장.
그러던 그가 2008년 갑작스럽게 단체 활동을 접고 자신만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물류업계를 떠났다. 
당시 그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싫고 자신이 해오던 일들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인 만큼 이제는 무거운 짐을 정부에게 돌리겠다고 말했었다. 그런 그를 만류하는 이들이 많았다. 기자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그는 물류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열악한 물류 환경 속에서 실제 운송업을 하는 지입차주들이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는 제도상의 문제를 보완시켜 현실을 개선시키고 싶었을 뿐인데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모든 요구를 뿌리치고 떠났었다.
그가 떠난 후 2년이란 세월이 흘렀을 때쯤 다시 그를 찾았다. 약 400여명이 유가보조금의 피해자로 있다는 某기업의 화물운전자 대표들이 물류신문에 도움을 청해왔고 그들의 애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이가 누굴까 고민하다 김현수 본부장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수소문 끝에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그를 찾아 화물운전자 대표들과 함께 방문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2011년 2월 먼저 연락을 해왔다. 2010년 3월 방문 후에도 피해자 대표들이 수차례 그를 찾아 도움을 청했고 그들의 간절한 요청에 그의 마음도 움직인 것이다. 다시금 물류업계에 돌아온 그는 과연 이 판단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개선되지 않는 시장과 날이 갈수록 진화되는 사기수법 등을 보면서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장안의 화제였던 화물운송시장 복마전 시즌 2 연재 예정

김현수 본부장은 물류신문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그와 물류신문의 인연은 200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권차모를 필두로 혼탁해진 물류시장을 바로 잡고자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며 경험한 사건사고와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해 연간 기획으로 화물운송시장 복마전을 연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화물운송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괄적인 모든 문제를 글로 쓰기 시작했고 그 기간 중에도 유가보조금의 부정 수급사례를 밝혀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본지를 통해서 기고한 화물운송시장 복마전은 某대학 교수의 입법발의와 각 기업과 정부에서 다양한 인용 자료로 사용되는 등 획기적인 연재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행적은 물류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글은 각 관공서 물류를 담당하는 부서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물운송시장 복마전 1편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아주 권위 있고 유명한 의사가 중증 암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수술대에 눕히고 배를 열어보니 도저히 손을 쓸 수조차 없이 전 장기에 암이 전위되어 다시 덮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무수히 많은 활동과 정부정책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의 물류현실이 올바르게 살아나기 위해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한다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음을 은근히 내비췄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과거에는 기적을 바랬지만 앞으로의 기적은 그가 직접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다. 그의 왕성한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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